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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죽도, 경계 위에서 사는 섬

by parttime1 2025. 7. 17.

고성 죽도, 경계 위에서 사는 섬

강원도 동해의 섬
강원도 동해의 섬

 

강원도 고성군 죽도는 우리나라에서 민간인이 거주하는 섬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입니다. 네이버 지도에서도 한참을 확대해야 겨우 보이는 점 하나. 하지만 그 점 위에는 여전히 삶이 이어지고 있고, 그 삶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분단과 군사, 고립과 생존, 그리고 공동체라는 다층적인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글은 관광지로 소개되지 않는 고요한 죽도에서 마주한 것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분단의 국경선과 민간의 생활권이 맞닿은 이 섬은, 어떤 안내서에도 적히지 않지만 가장 한국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작은 섬에 농축된 군사 시설의 긴장, 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사람들의 일상은 단순한 여행 그 이상을 느끼게 합니다.

대한민국 최북단 민간 거주 섬, 죽도

죽도는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에 속하며, 북위 38도선에 매우 인접한 곳에 있다. 즉, 남북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몇 km 떨어진 곳에 있다는 뜻입니다. 육지와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부터 불과 1.8km 거리이며, 해안 경계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돌출형 섬입니다. 섬의 면적은 약 0.2 km²에 불과하고, 한 바퀴를 천천히 걸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이 섬에는 항구도 없고, 정기 여객선도 없습니다. 주민들은 육지로 나갈 때 1일 1회 운항하는 소형 어선을 이용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며칠씩 배가 끊기기도 하고, 급한 약이나 물품이 필요하면 무전으로 요청해 전달받습니다. 전기와 인터넷은 들어오지만, 섬 안에는 병원, 마트, 편의점, 카페 같은 시설이 전무합니다. 필요한 물자는 미리 육지에서 구매해 가져오고, 그마저도 배가 끊기면 이웃 간 나눔으로 해결합니다.

2023년 기준, 죽도 주민은 약 28명. 대부분이 60~80대 노인입니다. 청년은 없고, 아이도 없습니다. 일부 주민은 자녀들이 도시에 살고 있고, 1년에 한두 번 명절에 방문합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예 왕래가 끊긴 채, 이 섬에서 고요히 생을 마무리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누군가에겐 고립이지만, 이들에겐 뿌리이자 남은 인생을 맡길 공간입니다.

섬을 덮은 군사구조, 감시 속의 생활

죽도는 행정구역상 ‘민간 거주지’이지만, 실직적으로 반은 군사구역에 가깝습니다. 섬 외곽으로 나 있는 길을 걷다 보면 수시로 군사지역 경고판이 보이고, 해안선 일부는 철제 관측 시설로 봉쇄되어 있습니다. 야간에는 해안 감시등이 돌아가며, 가끔은 육지에서 관측선이 정찰을 나와 섬 근처를 돌기도 합니다. 섬 안에는 군부대가 주둔하진 않지만, 비상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감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GPS 기반 경계시스템, 위성 감시, 육지와 연결된 무선통신망 등은 항상 작동 중입니다. 해안가에 텐트를 치거나, 일정 구역을 넘어서는 행동은 철저히 제한됩니다. 외부인은 반드시 주민 동행이나 군 허가가 있어야 출입 가능한 곳이 죽도입니다.  주민들은 이 조건을 이미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수십 년째 감시와 제한을 견디며 살아왔고, 그 사이 감시도 익숙한 배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저기 위에 달린 게 카메라예요. 맨날 돌아가요.”라는 말은 섬에서 흔한 인사처럼 들립니다. 이곳에선 감시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섬의 일부분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치 안개처럼. 항상 곁에 있는 무언가처럼.  

집들은 대부분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 주택이며, 외벽에는 바닷바람에 벗겨진 페인트가 조각조각 남아 있습니다. 창문에는 비닐 대신 판자가 덧대어 있고, 마당에는 장작, 빈 고무통, 오래된 해초망이 쌓여 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지만, 그 안에서 삶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전이면 할머니들이 공동수도에서 물을 받고, 해안가로 나가 바지락이나 홍합을 캡니다. 대부분 자급자족 형태이며, 판매를 위한 조업은 거의 없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마을 회관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간식을 나누며 하루를 보냅니다. 감시 속에서도 주민들은 그들의 삶을 묵묵히 이어갑니다.

 

죽도의 존재가 우리에게 묻는 것들

죽도는 단지 외딴 섬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사라지지 않은 ‘분단’이라는 현실이 어떻게 일상으로 흘러 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흔히 찾는 섬은 자연을 즐기거나 휴식을 위한 공간이지만, 죽도는 그 반대입니다. 풍경을 보여주기보다, 그 풍경 안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를 되묻는 공간입니다. 무언가를 ‘즐기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감각하고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죽도는 SNS에 올릴만한 포토스팟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이 조용한 섬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분단을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가?” 그리고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습니다. 해 질 무렵 섬 북쪽 끝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바다는 잔잔했고, 먼 수평선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거대한 경계가 그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리 없는 바다, 사람 없는 길, 그리고 멈춘 듯한 공기. 죽도는 작지만 그 고요함은 대단히 깊었습니다.

 

고성 죽도는 단지 작은 섬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구조가 일상에 어떤 파장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감내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폐쇄되거나 잊힌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호흡하는 섬이며,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언젠가 이 섬에서 군사 장비가 철수하고, 감시 카메라가 사라지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죽도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