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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라스 섬에서 망고보다 달콤한 하루

by parttime1 2025. 7. 18.

망고나무
망고나무

 

필리핀 비사야 제도의 작은 섬, 기마라스(Guimaras).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당도가 높다는 망고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너머엔 더 깊은 ‘단맛’이 있습니다. 망고 나무 아래 조용히 이어지는 섬의 삶, 작은 공방에서 흘러나오는 손의 흔적, 바람과 함께 낮게 말라가는 수공예 바구니들. 기마라스는 단지 열대과일 섬이 아니라, ‘일상의 감각’이 여행이 되는 공간입니다.

망고밭의 아침, 기마라스가 내는 첫 향기

기마라스 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공기 속에 배어든 망고 향입니다. 섬 전체에 약 50,000그루 이상의 망고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4월부터 6월 사이 망고 수확철에는 마치 과수원 안에 마을이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줍니다. 농부들은 새벽 5시부터 움직입니다. 아직 햇살이 본격적으로 내리기 전, 망고 나무 아래에서 밀짚모자를 눌러쓴 어르신들이 열매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따고 천으로 하나하나 감싸 쌓아 둡니다. 기마라스 망고는 상처에 특히 예민해, 유통되기까지 4~5번의 '조심스러운 손’을 거쳐야 하는 까다로운 과일입니다.

일반 여행자도 예약을 하면 농장에 들어가 망고 따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따자마자 바로 깎아 먹는 망고의 풍미는 시중에서 파는 과일과 전혀 다른 ‘향의 농도’를 자랑합니다. 그리고 농장 인근에선 갓 수확한 망고를 말리고 절이고, 말린 망고 껍질을 천연염색에 활용하는 등 섬 전체가 망고라는 하나의 재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마을 공방의 낮, 손의 기억이 깃든 바구니

기마라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는 ‘손의 노동’이 살아 있는 공방 문화입니다. 파운드(Pandaraonan)나 나비라(Nabitasan) 같은 조용한 마을에는 대나무와 라탄을 엮어 바구니, 매트, 모자, 식기 받침 등을 만드는 소규모 공방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대부분 여성 장인들이 운영하는 이 공방은 지역의 전통 기술을 지키는 동시에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공간입니다.

그들의 작업은 도구보다 손에 의존합니다. 대나무를 결대로 쪼개고, 얇게 갈라낸 후 따뜻한 물에 불리고 말리는 과정까지 모두 손수 이뤄지며, 하나의 바구니를 완성하는 데는 최소 이틀이 걸립니다. 색을 입힐 때는 망고 껍질이나 현지에서 자라는 식물 뿌리, 천연염료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산업용 화학염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환경에 해가 없고 더 부드러운 색감을 냅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그들의 작업 리듬입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반복되는 무늬 속에서 손은 시간을 짜고, 이야기를 엮습니다. 공방에서는 누구나 체험을 신청할 수 있으며, 바닥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대나무 줄기를 엮다 보면,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평온함이 자연스레 깃듭니다. 한 어르신은 “우린 이걸 팔려고만 짜진 않아요. 집에 둘 손때 묻은 게 더 소중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관광과 소비 중심의 여행에 익숙한 이들에게 ‘손의 쓰임’이 아닌 ‘손의 온기’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또한, 어린아이들 역시 놀면서 자연스럽게 엮는 법을 익히고, 세대 간 기술이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모습은 기마라스만의 따뜻한 교육이자 문화이기도 합니다.

이 바구니들이 지역을 떠나 해외로 수출되기도 하지만, 그 안엔 여전히 기마라스의 낮은 바람, 손의 온기, 그리고 삶을 천천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조용한 해변 마을, 낮은 풍경과 천천히 흐르는 시간

기마라스 섬은 대부분의 필리핀 섬들과 달리 대형 리조트나 호텔 체인이 없습니다. 해변도 유명 포토존보다는 로컬 어촌과 천천히 흐르는 마을의 일상이 중심입니다. 산로렌조(San Lorenzo)나 누에바 발렌시아(Nueva Valencia) 같은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 바다에서 노를 젓고, 할아버지는 나무 그늘 아래서 망고껍질을 말리고 있습니다. 이곳의 시간은 소리도 작고, 그림자도 짧고, 인사도 낮습니다. 그저 “Good noon” 하고 지나가면, 그 말에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정이 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어선들이 해변으로 돌아오고, 그 위에 갈매기가 날아들고, 멀리선 마을 방송 스피커로 성가대 합창 소리가 바다 바람을 타고 퍼져나갑니다. 관광 명소는 적지만, ‘살아 있음’은 가득한 풍경. 그것이 바로 기마라스의 해변입니다.

 

기마라스를 가기 전엔 ‘망고가 유명한 섬’이라는 이미지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섬을 걷고, 나무 그늘에 앉아, 바구니 엮는 할머니를 보고, 말린 망고 냄새가 나는 해안가를 지나면 알게 됩니다. 이곳의 단맛은 과일이 아니라, 삶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기마라스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천천히 흐르는 일상’과 ‘손의 온기’를 회복하게 해주는 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