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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끄라체 돌고래와 마을의 공존

by parttime1 2025. 7. 21.

메콩강 이라와디 돌고래
메콩강 이라와디 돌고래

 

캄보디아 메콩강 중류의 한적한 도시 끄라체(Kratié). 이곳은 세계에서도 희귀한 민물 돌고래, 이라와디 돌고래(Irrawaddy Dolphin)의 마지막 서식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돌고래보다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이 돌고래들과 함께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을 지키고, 삶을 재구성해 나가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 글은 끄라체 마을의 생태 보전, 관광의 재해석, 공동체의 변화를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메콩강의 숨은 생명, 이라와디 돌고래

끄라체 지역은 메콩강이 완만히 흐르며 폭이 넓어지는 지점입니다. 바로 이곳에 이라와디 돌고래가 서식합니다. 이 돌고래는 바다에 사는 대부분의 돌고래와 달리, 민물에서 살아가는 희귀종입니다. 둥근 머리, 작은 등지느러미, 유순한 행동이 특징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80마리 이하만 남아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중 약 절반이 바로 이 끄라체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돌고래들은 한때 멸종 위기 직전까지 몰렸던 생물입니다. 무분별한 어업, 전기 낚시, 플라스틱 오염, 관광선의 소음 등으로 인해 서식 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20세기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돌고래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며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에 대응해, 끄라체 지역의 주민들은 직접 돌고래 보호 구역 지정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협력하여 특정 구역 내 어업 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모든 지역 관광 보트에 엔진 제한, 운항 거리 가이드라인, 정해진 코스만 운행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이는 단지 돌고래 보호를 넘어서, 공동체의 생존 방식 전체를 바꾸는 변화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어부들은 직접 수질 모니터링과 부표 설치에도 참여하며 환경 보호의 주체로 나섰습니다. 마을 공동체는 비공식 자금 조달로 돌고래 관련 장비를 마련했고, 아이들까지도 강가의 쓰레기를 주우며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노력은 단순한 보전 차원을 넘어, 지속가능성과 생태 감수성의 생활화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보호에서 공존으로: 마을의 선택

끄라체의 돌고래 마을은 단순히 “보호구역 안에서 살아가는 지역”이 아닙니다. 그들은 돌고래를 관광 상품이 아닌, 삶의 이웃이자 공동 운명체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엔 어로 활동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생태 관광, 로컬 체험 프로그램, 그리고 돌고래 지킴이 교육 활동이 주민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마을마다 1~2명의 ‘돌고래 파수꾼’이 지정되어 매일 강 주변을 순찰하고, 관광객과 보트 운전자들에게 돌고래와의 거리 유지, 쓰레기 투기 금지, 저속 운행 등을 안내합니다. 놀라운 건 이들이 공식 직업이 아닌 자원봉사로 활동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이 일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자, ‘자기 존중의 방식’입니다.

또한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우리 마을을 지키는 생물’로서 돌고래의 생태와 역사, 보호법을 가르치며, 돌고래가 단지 관광 수입원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이유”임을 교육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모든 변화가 경제적 수익뿐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돌고래를 돌보는 마을'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생태 보전과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지역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에게는 강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일부는 수개월간 체류하며 지속가능한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합니다.

돌고래가 남긴 변화, 마을이 만든 미래

돌고래 보호로 시작된 변화는 이제 지역 경제, 문화, 생태계 전반에 걸친 전환점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공동체의 자부심입니다. 돌고래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단지 ‘환경 보호’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끄라체 마을 일부에서는 ‘돌고래 학교’, ‘자연보전 워크숍’, ‘로컬 가이드 인증제’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지속가능한 공동체 관광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어부들은 어업에서 로컬 가이드나 수공예 제작자로 전환해 새로운 경제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끄라체만의 사례가 아닙니다. 동남아시아 다른 지역에서도 이 사례를 배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며, 2022년에는 UNDP로부터 “지역 기반 지속가능 생태 보호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마을의 또 다른 혁신은 마을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노인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젊은 층과 여성, 환경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생태 보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이러한 세대 간 협업은 공동체 내 유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돌고래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의 미래는 단지 보호를 넘어서 스스로 설계하는 지속가능한 생태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끄라체는 돌고래의 마지막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생명을 지키며 스스로 변화하게 된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돌고래를 지킨 게 아니라, 돌고래가 우리를 바꿔놓았다”라고. 자연과 공존한다는 것, 생명을 보호한다는 것은 단순한 환경 운동이 아니라 삶을 다시 쓰는 일입니다. 끄라체는 그걸 해낸 곳입니다. 돌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이 마을은 오늘도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조용히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