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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카위 섬 원주민과 산다는 것

by parttime1 2025. 7. 19.

랑카위 해안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
랑카위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

 

랑카위 섬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오랑 아슬리(Orang Asli)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레이어로 '사람'이라는 뜻의 '오랑'과 '원주민'을 뜻하는 '아슬리'가 합쳐진 말로, 말레이 원주민 공동체인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들의 생존 방식, 자연 인식,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지켜낸 문화적 지혜를 세 가지 측면으로 풀어봅니다.

숲의 언어를 아는 사람들

오랑 아슬리는 나무를 자르기 전에 숲에 허락을 구합니다. 이들은 숲을 자원 창고가 아니라 생명과 대화하는 공간으로 인식합니다. 랑카위 섬의 내륙에는 관광객이 거의 가지 않는 밀림 지대가 있으며, 이곳은 오랑 아슬리 Temuan 부족이 채집, 사냥, 약초 채취 등을 통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그들은 바람의 방향, 나뭇잎의 떨림, 동물의 울음소리를 생활의 신호로 해석하며, 감각 기반의 생존 방식을 유지합니다. 특히 숲에서 채취한 식물은 단순한 식량이 아닌 치유와 공동체 의례에 활용됩니다. 이는 도시화된 현대 사회와는 다른,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지식 체계'입니다. 놀라운 건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물에 대해 암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찰하며 익히는 법'을 배우고, 공동체 전체가 교사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숲은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혜가 축적된 공간'이 됩니다. 또한 식물의 계절별 효능, 수확 시기, 활용 부위에 대한 세부 지식도 세대를 통해 구술로 전달됩니다. 최근에는 도시로 이주한 일부 오랑 아슬리 청년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자연 기반 삶을 선택하면서, 이 지식 체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랑 아슬리의 바다, 삶을 건너는 법

랑카위 북쪽 해안 인근에는 오랑 아슬리의 작은 어촌 마을이 있습니다. 이들은 바닷물의 색 변화나 조개껍데기의 배열로 날씨와 조수 변화를 예측하는 전통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무동력 배를 사용하는 이유는 기름을 아끼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물살과 어종을 파악하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어획량보다 중요한 건 ‘다음 세대가 또 고기 잡을 수 있도록 남기는 일’이기에 필요 이상은 채취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심지어 바다에 고개를 들이밀어 ‘생선 냄새’를 맡고 그날의 어장을 예측하는 기술은 외부인에겐 마법처럼 느껴집니다. 가족 단위로 이동하는 이들은 작은 배 한 척에 그날의 생계, 식량, 공동체 분배까지 실어 나릅니다. 재미있는 건 물속에서 조용히 머무는 태도가 물고기와 자연의 리듬에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는 철학입니다. 이는 산업적 어업과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이며, 이들에게 있어 '많이 잡는 것'은 절대 미덕이 아닙니다. 또한 물고기를 잡는 도구 역시 생분해 가능한 재료로 만든 그물이나 창을 사용하여, 환경에 남기는 영향을 최소화합니다. 일부 마을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조기 어로 교육을 시행하며, 생태계 보호 윤리를 함께 가르치는 등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기술 전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다는 이들에게 단순한 생계터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맞추는 기준이자 조심스럽게 건너야 할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집니다.

문명과 전통의 경계에서 살아남기

관광이 발전하면서 오랑 아슬리 공동체는 빠르게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일부는 해설사, 가이드, 장신구 제작자로 참여하며 생계를 확장했지만, 동시에 전통 언어와 의례가 줄어드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랑카위 섬의 중앙 고원지대 일부는 리조트 개발로 인해 원주민 주거지가 줄어들었고, 문화 전승의 공간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공동체는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10세 전후 아이들에게는 숲과 바다의 기본 지식, 생존 도구 만들기, 공동체 윤리를 가르치는 ‘로컬 커리큘럼’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외부와의 공존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내부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삶이 단지 '전통적'이어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하기 때문'에 의미 있다는 점입니다. 랑카위의 이 작은 공동체는 기후 위기 시대의 생존 방식에 대해 우리에게 조용히 답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나 NGO의 지원이 아닌, 마을 내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변화에 자율적으로 대응하려는 시도 역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관광으로 유입된 자원을 '공동 소득화'하여 마을 기반 복지에 재투자하는 구조도 일부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을 지키며 경제적 생존을 동시에 추구하는 주체적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랑 아슬리의 삶은 우리가 잊고 지낸 자연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랑카위의 숲과 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이들의 시선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묻습니다. 이 공동체의 삶은 단순히 전통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연을 지배하지 않고, 상생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오히려 오늘날의 도시문명과 기후위기 시대에 더 실용적인 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행자는 그저 보고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은 오늘도 바다와 숲과 조용히 계약을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느린 발걸음은 우리보다 먼저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 잊은 삶의 태도가 그들의 하루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