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마늘로 살아가는 마을 이야기

by parttime1 2025. 7. 23.

마늘
마늘

 

경북 의성군 봉양면은 흔히 '의성마늘의 본고장'이라 불립니다. 이곳은 강한 일조량과 낮은 습도, 배수가 좋은 사질토를 갖춘 지역으로, 마늘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마늘이 잘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이 마을이 특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의 마늘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생계의 중심이자 공동체의 상징입니다. 마늘이라는 작물이 어떻게 한 마을을 구성하고, 유지시키는지를 관찰하는 일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선 삶의 체험입니다.

마늘 농사는 노동의 연속이다

마늘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에 손이 많이 가는 작물입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마을 주민들은 종구를 손질하고 밭을 정리합니다. 의성의 마늘은 보통 10월 중순에 심고 이듬해 6월에 수확하게 됩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마늘은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눈과 서리를 견디며 생장을 준비합니다. 봄이 되면 마늘잎이 나오고, 그때부터는 잡초 관리와 병충해 예방, 비료 조절 등 손이 더 바빠집니다. 특히 의성에서는 '노지재배'가 중심이기 때문에 비닐하우스보다 자연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강한 햇빛과 마른바람 속에서 자란 마늘은 크기가 작고 단단하지만, 그만큼 맛과 향이 진해집니다.

수확은 대부분 손으로 이루어집니다. 기계를 쓰기 어려운 작은 밭도 많고, 손으로 캐야 손상 없이 온전한 구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확을 다 했다고 마늘 농사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수확 후에는 마늘을 말리고, 다듬고, 선별하는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이 모든 작업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합니다. 마늘은 단지 농작물이 아니라, 계절의 리듬이자 공동의 노동으로 연결된 시간입니다.

마늘이 차린 밥상, 그 너머의 문화

이 마을에서는 마늘이 단순한 반찬 재료가 아닙니다. 주요 요리의 핵심으로 사용되며, 음식 문화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생마늘쌈, 마늘된장찌개, 마늘장아찌, 마늘국수, 마늘차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마늘이 소비되고 있습니다. 지역의 작은 식당이나 가정식 체험장에선 마늘을 주재료로 한 ‘마늘 한상차림’이 제공됩니다.

특히 의성에서는 마늘장아찌와 구운 통마늘이 인기가 많습니다. 장아찌는 오래 숙성한 간장과 식초 베이스로 만들어지며, 신맛보다는 감칠맛이 강하게 남는 편입니다. 구운 마늘은 숯불 혹은 프라이팬에 껍질째 익혀 속살만 꺼내 먹는 방식입니다. 의성 마늘은 알이 작고 단단하지만, 열에 익히면 매운맛이 줄고 단맛이 살아나서 구운 마늘로 즐기기 좋습니다.

음식 외에도 마늘은 다양한 가공 상품으로 이어집니다. 마늘분말, 흑마늘, 마늘캔디, 마늘차 등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 특산품입니다. 이들 상품은 단지 판매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지역 농가의 추가 수익원이자, 마을경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입니다. 마을에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마늘 세척, 절임, 포장 등을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늘로 연결된 삶의 구조

이 마을의 특징은 마늘을 중심으로 삶이 조직된다는 점입니다. 고령의 농민과 귀농한 청년들이 함께 작황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작업에 참여합니다. 1인당 재배 면적은 작지만, 판매는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구조는 소규모 농가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며, 마을 전체가 하나의 생산 단위처럼 움직이도록 돕습니다.

의성군은 매년 ‘마늘축제’를 개최하며, 외지인을 대상으로 마늘농사 체험과 마늘요리 경연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단지 마늘을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라, 마을의 정서를 외부에 개방하는 시간입니다. 이때 마늘은 더 이상 작물이 아니라, 교류의 매개체가 됩니다. 실제로 이 축제를 계기로 마을에 관심을 갖고 귀촌한 사례도 있습니다.

마을에는 마늘을 주제로 한 작은 박물관, 마늘가공센터, 교육공간이 운영 중입니다. 특히 청년 귀농자들이 참여한 마늘 브랜드 디자인, 로컬푸드 플랫폼 운영은 마늘 농사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도입니다. 이런 다층적인 홍보 구조는 ‘단일 작물 의존’이라는 취약점을 넘어서기 위한 공동체의 전략이며,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시도입니다.

 

의성의 마늘마을은 단지 그들의 특산물로 알려진 지역이 아닙니다. 마늘은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을 연결하고, 노동을 공유하며, 문화를 만드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땅을 읽고, 시간을 지키며, 한 뿌리의 작물을 키워내는 과정은 여행자가 쉽게 마주할 수 없는 깊은 감각을 제공합니다.

만약 당신이 단순한 풍경이나 음식 사진보다, 한 마을의 구조와 생존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곳의 마늘은 그 여정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곳은 느리지만 뚜렷하고, 단순하지만 복잡한 매력을 가진 공간입니다. 마늘이 보여주는 여행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삶의 근원을 되짚어보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