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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일 드 생트마리, 해적의 섬에서 고래의 섬으로

by parttime1 2025. 8. 16.

혹등고래
혹등고래

 

마다가스카르 동해안, 인도양의 푸른 물결 속에 길고 가느다란 섬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현지어로는 노시 보라하(Nosy Boraha), 프랑스어로는 일 드 생트마리(Île Sainte-Marie). 이곳은 한때 17~19세기 해적들의 아지트였고, 지금은 매년 남극에서 찾아오는 혹등고래들의 쉼터입니다. 바람의 방향과 해류의 흐름, 사람의 발길과 고래의 숨결이 교차하는 이 섬은, 역사·생태·관광이 한 자리에서 맞물리는 드문 공간입니다.

역사적 항로·해적 유산의 흔적

일 드 생트마리의 해적 이야기는 17세기 말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인도양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무역의 중심 항로였고, 수많은 상선이 향신료·금·비단을 싣고 지나다녔습니다. 섬 주변의 얕은 바다와 복잡한 산호초 지형은 대형 군함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대신 작은 범선과 갤리선에 익숙한 해적들에게는 최고의 은신처가 되었습니다.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한 해적들은 무역선을 급습하고, 약탈한 물품을 현지 해안과 비밀 창고에 숨겼습니다.

당시의 해적 공동체는 단순한 범죄 집단을 넘어 일종의 ‘해적 공화국’ 같은 구조를 가졌습니다. 배를 탈취해 온 물품은 선원 모두에게 일정 비율로 나누었고, 부상자에 대한 보상 규칙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해적 헌법’이라 불리는 규약을 만들어 내부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이 규약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해적들의 생활상과 당시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섬에는 지금도 ‘해적 묘지(Pirate Cemetery)’라 불리는 곳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는 해골과 십자가가 새겨진 묘비가 줄지어 있으며, 일부 비석은 바다를 향하고 있어 망망대해를 떠난 해적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곳을 상징합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묘지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실제 인물들의 무덤임을 입증하기 위해 DNA 분석과 유물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선의 목재와 로프, 항해 도구들이 바닷속에서 발견되며, 잠수 조사팀은 이를 ‘역사적 난파선 보존 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해적사와 관련된 유물들은 생트마리 마을의 작은 박물관에서 전시되어, 방문객들에게 과거의 숨결을 전하고 있습니다.

고래·해양생물의 보전과 관광관리

이 섬이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세기 후반입니다. 매년 6월에서 9월 사이, 혹등고래들이 남극에서 번식과 출산을 위해 따뜻한 인도양 북쪽 해역으로 이동하면서 생트마리 앞바다에 머무르게 됩니다. 고래들은 이곳의 잔잔한 만과 따뜻한 수온을 선호하며, 어미와 새끼가 나란히 헤엄치는 장면은 섬의 상징적인 풍경이 되었습니다.

고래 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후반입니다. 초기에는 작은 어선이나 낚싯배를 개조해 관광객을 태웠지만, 현재는 국제 해양기구의 가이드라인에 맞춘 ‘책임 있는 고래 관찰 프로그램’이 운영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고래와 최소 100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고, 엔진 소음을 줄이며, 하루 운항 횟수를 제한하는 규칙을 포함합니다.

현지 해양연구기관과 관광업체들은 협력하여 고래 개체 수와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합니다. 드론을 활용해 촬영한 영상은 연구와 홍보에 모두 사용되며, 고래 식별을 위한 개별 지느러미 무늬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되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관광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보전 활동과 연결되도록 만듭니다.

관광 수익은 지역 주민에게도 돌아갑니다. 선박 운항, 안내, 숙박, 식음료 서비스까지 모두 현지인을 우선 고용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일부 수익은 해양 보호 구역 관리와 쓰레기 수거 활동에 재투자됩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고래는 우리 섬의 미래’라는 말이 회자되며, 보전과 생계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화재·생태관광의 균형 방안

일 드 생트마리의 매력은 해적 역사와 해양 생태라는 두 가지 축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두 요소는 관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관광 개발 과정에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역사 유적은 지나친 상업화로 훼손될 위험이 있고, 생태 관광은 무분별한 접근이 해양 생물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섬 당국은 ‘이중 보전 구역’ 정책을 시범 운영 중입니다. 해적 묘지와 난파선 인근은 발굴·복원 전문가와 문화 해설사만 출입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고래 서식 해역은 일정 시기와 구역에만 관광 선박 진입을 허용합니다. 이렇게 두 자원을 각각의 보전 방식에 따라 관리함으로써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관광 프로그램 역시 양 축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오전에는 해적 역사 트레일과 박물관 투어를 진행하고, 오후에는 친환경 보트로 고래를 관찰하는 ‘역사와 바다의 하루’ 패키지가 대표적입니다. 이를 통해 여행자는 하루 안에 섬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해양과 역사 수업’을 진행하여, 미래 세대가 두 자원의 가치를 함께 이해하고 지켜나가도록 교육합니다. 이는 단기적인 관광 수익보다 더 중요한 투자로, 섬의 정체성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기반이 됩니다.

 

일 드 생트마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섬이 아닙니다. 이곳은 해적의 깃발과 고래의 꼬리가 같은 바다 위에서 교차하는 장소이며, 역사와 생태가 한 섬 안에서 조화롭게 숨 쉬는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이 섬의 노력은, 관광이 어떻게 보전과 공존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만약 인도양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 섬을 일정에 넣어보길 권합니다. 해적의 전설을 들으며 난파선 위를 거닐고, 오후에는 바다 위에서 고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섬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눈앞의 풍경 너머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