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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타와이족 문신이 말하는 삶

by parttime1 2025. 7. 20.

인도네시아 전통 문신
인도네시아 전통 문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쪽 끝, 판다이 시불루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야 도착하는 열대 우림의 섬, 멘타와이(Mentawai). 이곳에는 몸 전체에 정교한 문신을 새기고 살아가는 멘타와이족이 있습니다. 이들의 문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삶의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정체성을 담은 언어입니다. 이 글에서는 멘타와이족의 문신 문화가 어떻게 삶의 기록, 전통의 실천, 공동체의 연대로 이어지는지를 세 가지 시선으로 살펴봅니다.

몸에 새기는 삶의 지형도

멘타와이족의 문신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문신은 삶을 새기는 지도입니다. 문신은 보통 사춘기 이전에 시작되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팔, 다리, 가슴, 배, 등, 얼굴까지—몸 전체를 따라 정교한 기하학적 패턴이 새겨집니다. 이 무늬들은 개인의 가문, 역할, 직업, 신과의 관계, 자연과의 연결성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부는 물결과 물고기 모양의 문신을, 사냥꾼은 창과 야생동물의 상징을 가집니다. 심지어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까지도 문신의 위치와 패턴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들의 문신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아날로그합니다. 얇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 바늘과 나무숯으로 만든 잉크를 사용하며, 문신 장인은 수십 년의 수련을 거쳐 기술을 전수받습니다. 한 사람이 완전한 문신을 새기는 데는 최소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리며 이 과정은 단순한 시술이 아니라, 삶의 통과의례입니다. 고통은 인내의 과정이고, 흘린 피는 새로운 존재로의 이행을 상징합니다. 멘타와이족에게 문신은 삶의 타임라인이자 정체성의 시각화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몸으로 ‘말하는’ 방식입니다.

더불어 이 과정은 공동체 전체의 참여를 전제로 한 의식입니다. 문신을 새기는 날에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고,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축복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닌, 한 명의 사회 구성원이 정식으로 공동체 안으로 편입되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즉, 문신은 외적인 변화가 아닌 내적인 소속의 선언이며, 이를 통해 멘타와이족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몸에 새기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신 장인과 공동체의 기억

멘타와이족의 문신은 반드시 장인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 장인을 ‘sipatiti’라 부르며, 이들은 단지 기술자이자 예술가일 뿐 아니라 공동체의 구술 기억을 전하는 자입니다. sipatiti는 대개 고령의 남성이나 여성으로, 세대 전승을 통해 지식을 이어받습니다. 문신을 새기는 동안 이들은 개인의 가족사, 조상 이야기, 마을의 신화 등을 함께 나눕니다. 즉, 문신 과정 자체가 ‘이야기를 통한 기억의 계승’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문신의 도안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계절, 결혼, 자녀 출산, 사냥 성공 등 삶의 변화에 따라 문신이 추가되거나 보완됩니다. 멘타와이족의 몸은 단지 ‘캔버스’가 아니라 끊임없이 쓰이고 수정되는 살아 있는 전통 문서입니다. 1970~90년대에는 정부의 동일화 정책으로 문신 시술이 금지되기도 했고, 젊은 세대는 도시로 나가면서 문신이 ‘시골의 상징’으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문화 복원 운동과 함께 일부 젊은이들이 다시 문신을 새기고, sipatiti들이 직접 워크숍을 열며 지역학교에서 문신 문화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몸에 남은 문신을 통해 자신들의 기억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신으로 남는 세계관과 자연관

멘타와이족에게 몸은 자연과 연결된 하나의 존재입니다. 문신은 단지 ‘개인’의 상징이 아니라, 자연과 조상, 공동체가 함께 연결된 삶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나뭇잎 무늬는 숲과의 친밀감을, 뱀이나 곤충 문양은 위협과 동시에 존중의 감정을 상징합니다. 문신은 그 경계를 잇는 주술적 통로라고 여겨지며, 의례적 치유와 보호의 역할을 합니다.

문신은 기능적으로도 보호, 치유, 축복의 의미를 가지며, 특정 허브나 나무와 함께 사용될 경우 의료적 도구로도 여겨졌습니다. 최근 들어 외부에서 멘타와이족 문신을 예술·디자인으로 소비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멘타와이 공동체는 “우리의 문신은 상품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라며 분명한 경계를 세우고 있습니다. 문신은 몸에 남는 예술이자, 공동체 전체가 나누는 세계관입니다.


멘타와이족의 문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몸에 남긴 언어이자,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살아 있는 문서입니다. 근대화와 금지, 그리고 복원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몸으로 되새기고, 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문신은 단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멘타와이족이 선택한 지워지지 않는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