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박깟(Bac Kan)은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삶과 감각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산간 마을입니다. 베트남 중부와 남부의 커피 생산지와는 달리, 박깟은 커피와 허브, 전통 약초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독특한 향의 마을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도시적인 커피 문화와는 전혀 다른, 베트남 북부 산간 마을에서 함께하는 커피와 허브 체험을 소개합니다.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박깟은 가장 조용하고 진한 감각의 ‘향기로운 쉼표’를 선사합니다.
박깟에서 만나는 향기 – 로컬 커피 문화의 의외성
박깟에서 커피 이야기를 시작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베트남에서 커피 하면 다들 바람과 볕이 좋은 중부 고원지대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깟의 커피는 조금 다릅니다. 이곳은 해발 300~500m의 산지에 소규모 농가들이 자신들의 정원 한편에 커피나무를 키우고, 수확한 열매를 볕에 말려 직접 로스팅해 마시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현지인들은 대체로 ‘Trà cà phê’(허브 섞인 커피)를 선호합니다. 말린 허브잎, 생강, 심지어 계피나 박하잎을 함께 넣고 끓이거나, 드립 방식에 허브 원료를 섞어 향을 더하는 방식이 사용됩니다.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라기보다, 치유 음료나 가정의 전통 레시피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한 작은 민박집주인은 매일 아침 직접 볶은 커피콩과 레몬그라스 잎을 섞어 내린 진한 커피를 내줬는데, 첫 모금에서 혀를 감싸는 쌉쌀함과 함께 허브의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퍼졌습니다. 이 조합은 카페인으로 몸을 깨우기보다는 마음을 풀어주는 음료였습니다. 박깟의 커피는 ‘정신적 카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이 로컬 스타일은 커피의 정의가 한 잔의 에스프레소나 드립이 아니라, 그 땅의 향과 체온까지 포함된 것임을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산속 허브의 힘 – 약초에서 배운 삶의 속도
박깟 지역은 커피보다 허브와 약초의 본고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소수민족인 따이족(Tày), 눙족(Nùng), 다오족(Dao)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약초는 100여 가지가 넘고, 마을마다 자체적인 조합 방식이 존재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직접 산에 올라 약초를 채취하고, 삶아 차로 마시거나 목욕에 사용하는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곳의 허브는 단순한 건강식품이 아니라 삶의 일부입니다. 예를 들어 ‘la khau’라는 이름의 산야초는 숙취 해소와 위장 강화에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주말이면 주민들이 길가에서 다발로 말려놓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ngải cứu’(쑥)는 감기 예방을 위한 찜질용으로, ‘gừng núi’(산생강)는 차가운 손발을 덥히는 데 사용됩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체험은 허브 찜질 사우나입니다. 대니무로 만든 통 안에 들어가 현지 허브를 끓여 만든 증기를 20분간 흡입하는 체험으로, 따이족 여성들이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온몸의 모공이 열리며 식물의 향이 몸속 깊이 들어오는 느낌은 단순한 마사지나 스파보다 더 자연적인 힐링이었습니다. 박깟 사람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우선 산에 들어가서 산의 냄새로 몸을 다스립니다. 이곳에서 허브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일상이며 세대와 감각을 잇는 '향의 언어'입니다.
기계 없는 카페 – 마을이 만든 공간과 속도
박깟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카페’ 다운 장소가 거의 없습니다. 간판도, 메뉴판도 없는 곳에서 주민들이 대나무 테이블에 차를 내주고, 한쪽에서는 커피를 볶는 연기가 나며, 고양이가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고 있는 그런 풍경이 일상입니다. 하지만 이곳엔 ‘느린 속도의 미학’이 있습니다. 빠르게 내려 마시는 커피 머신도, 진동벨 울리는 테이크아웃 커피도 없습니다. 커피를 내릴 때나 허브를 끓일 때는 시간이 필요하고,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서로 안부를 나눕니다. 이곳에서 커피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심지어, 어떤 집에서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15분 넘게 걸리기도 했는데, 그 기다림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 사이 마당 의자에 앉아 구름을 보고, 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카메라 없이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빠름이 미덕인 시대에, 박깟은 느림이 자산인 공간입니다.
박깟은 커피로 시작해 허브로 확장되며, 결국 사람의 감각까지 다다르는 베트남 북부의 작은 마을입니다. 유명 카페 하나 없이도 커피가 깊고, 상표 없는 허브 한 잎으로도 치유가 가능한 이곳은 '작지만 밀도 있는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목적지입니다. 커피를 마시는 데 15분을 기다릴 수 있다면, 그 시간 속에 담긴 여행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다음 베트남 여행에서는 박깟이라는 이름 없는 향기를 따라가 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