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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비스타, 바다와 기억으로 다시 일어선 마을

by parttime1 2025. 8. 23.

뉴펀들랜드 보나비스타
뉴펀들랜드 보나비스타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보나비스타(Bonavista)는 바다와 뗄 수 없는 역사를 가진 마을이다. 16세기 유럽 탐험가들이 처음 대서양을 건너왔을 때, 이곳은 대구가 끝없이 몰려드는 풍요의 바다였다. 수 세기 동안 보나비스타 주민들은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대구는 음식이자 수출품이었으며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러나 20세기말, 무분별한 남획과 대형 어선의 산업화는 그 풍요를 무너뜨렸다. 1992년 캐나다 연방정부는 ‘대구 어획 금지령’을 선포했고, 이는 수백 년 이어진 삶의 방식을 단절시키는 사건이었다. 생계뿐 아니라 공동체의 의미마저 흔들리게 한 이 위기 앞에서, 보나비스타는 몰락 대신 재생을 선택했다. 오늘날 이 도시는 ‘어업의 상실’을 문화와 기억, 그리고 관광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전통 어업의 황금기와 붕괴

보나비스타의 시작은 바다였다. 16세기 후반, 포르투갈과 영국, 프랑스의 어부들이 이 해역에 닻을 내렸을 때, 그들이 목격한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대구 떼였다. 마을은 매년 여름이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업장이 되었다. 남자들은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았고, 여자와 아이들은 해안에서 대구를 손질하고 바람에 말렸다. 이렇게 가공된 소금 대구(salted cod)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남미까지 퍼져나갔고, 보나비스타는 세계 어업 네트워크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 풍요는 영원하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대형 트롤어선과 냉동 기술의 발전으로 어획량은 급격히 늘어났고, 과학적 관리가 뒤따르지 못한 채 자원은 빠르게 고갈되었다. 대구 개체수는 1970년대 이후 눈에 띄게 줄었으며, 결국 1992년 정부는 어획 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단순한 산업 규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수천 명의 어부와 가족이 일자리를 잃었고, 젊은 세대는 도시로 떠났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수백 년의 역사가 단절되는 순간이었다.

황금기에서 붕괴로 이어진 이 역사는 경제적 손실을 넘어,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졌다. 보나비스타 사람들에게 대구는 단순한 생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노동의 의미, 가족의 기억,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어업 붕괴는 단순히 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문화와 삶의 기반을 잃는 사건이었다. 이후의 재생은 ‘경제 회복’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이 마을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되었다.

지역사회 재생 전략(문화·레거시)

위기 이후 보나비스타는 바다의 기억을 지워버리기보다, 그것을 새로운 자산으로 재구성하는 길을 선택했다. 첫 번째 전략은 문화유산의 재발견이었다. 오래된 창고, 어선이 정박하던 선착장, 대구를 말리던 건조대(drying flakes)는 처음에는 쇠락한 흔적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것이 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증거임을 깨달았다. 지역 단체와 협동조합은 이 건물들을 복원하여 게스트하우스, 작은 박물관, 공방으로 바꾸었다. 폐허 같던 공간이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또 다른 전략은 구술 기록과 교육이었다. 어업 붕괴를 직접 겪은 어부와 가족, 마을의 노년층은 ‘바다가 사라진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과거를 단절이 아닌 교훈으로 남겼다. 학교에서는 이 자료를 교육에 활용했고, 관광객들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보나비스타의 재생은 건물을 복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을 이어가는 일로 확장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주민 주도의 참여였다. 외부 자본이나 일시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재생을 주도했다. 공동체의 힘으로 복원한 주택과 창고는 카페, 숙박시설, 공방이 되었고, 그 수익은 다시 지역에 돌아왔다. 이는 단순한 경제 회복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립’을 상징했다. 과거 바다에서 함께 노동하던 연대의 방식이, 이제는 문화와 관광의 영역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체험관광과 지속가능성

오늘날 보나비스타는 체험 중심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다. 관광객들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업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다. 옛 창고에서는 대구 손질 시연이 열리고, 마을 주민들은 자신이 경험한 바다 이야기를 들려준다. 건조대 위에서 진행되는 소금 대구 작업 체험은 과거의 노동 방식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런 체험은 관광객에게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여기에 자연 관광이 더해진다. 보나비스타 앞바다는 고래와 바닷새가 모여드는 생태 보고로, 해양 생태 투어와 트레킹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지역 축제에서는 전통 음악과 음식이 소개되며, 어업 공동체의 문화가 축제로 이어진다. 과거의 바다가 단순히 ‘자원’이었다면, 오늘날의 바다는 체험과 학습, 교류의 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관광의 확대는 또 다른 과제를 낳는다. 보나비스타는 대구 붕괴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관광 역시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대규모 개발보다 소규모 숙소와 지역 식자재 기반의 음식점을 장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관광업은 외부 자본의 일방적 침투를 막고, 경제적 이익을 공동체 안에서 순환시킨다.

또한 보나비스타는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해양 생태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해양 연구기관과 협력해 생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에게 해양 보존의 중요성을 알린다. 이는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한 새로운 관광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보나비스타의 여정은 단순한 산업의 흥망사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을 잃은 공동체가 기억과 문화, 그리고 연대를 통해 다시 일어선 이야기다. 대구는 여전히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 부재를 통해 사람들은 자원의 한계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배웠다. 오늘날 보나비스타는 대서양 끝의 작은 마을이 아니라, ‘상실을 통한 재생’의 상징이자, 세계가 배우는 하나의 교과서다.

이 마을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자원이 고갈된 뒤,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보나비스타의 대답은 분명하다. 바다와 함께한 기억, 그것을 지켜내는 공동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음 세대와 나누는 문화. 그 자체가 곧 보나비스타의 미래이자,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