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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분천역 산타마을, 크리스마스가 끝난 마을을 걷다

by parttime1 2025. 7. 11.

산타인형
산타인형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난 마을은 어떤 풍경일까요? 반짝이던 불빛은 꺼지고, 사람의 발길도 줄어든 그 자리에 ‘진짜 마을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경북 봉화에 있는 분천역 산타마을은 겨울철 관광명소로 유명하지만, 비수기엔 마치 동화 속 배경만 남겨진 채 시간이 멈춘 곳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번 여행은 성수기가 아닌 4월 초, 눈도 없고 산타도 없는 분천역을 찾았습니다. 관광지라는 포장이 벗고, 일상으로 돌아간 시골 마을의 시간을 따라 걸어본 이야기입니다.

눈 없는 산타마을의 첫인상

분천역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작은 간이역입니다. 산타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이곳은 1950년대 중반부터 강릉선의 작은 철도역으로만 존재해 온, 그저 아주 오래된 시골역입니다. KTX 도 STR 도 닿지 않는 산타마을에 가기 위해선 청량리에서 ITX-새마을을 타고 영주로 가서, 거기서 무궁화호로 환승해 1시간 가까이 달려야 합니다.

4월 초, 역에 내리자 관광객은 우리 가족을 제외하곤 두세 명뿐이었습니다. 역 플랫폼 한쪽에 놓인 산타 조형물은 햇빛에 색이 조금 바래 있었고, 크리스마스트리는 장식 없이 뼈대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았던 화려한 풍경은 없었지만, 고요한 마을은 그래서 더 진짜 같았습니다.

분천역 앞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르신 한 분이 작은 밭을 일구고 계셨고, 철로 옆으로는 붉은 진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산타마을은 빨간 지붕 위에 눈이 소복이 내린 겨울날의 모습이지만 봄의 산타마을은 빨간 지붕 사이로 유채꽃이 피어있는 일상의 모습이지만 오히려 더 산타마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관광지를 벗어난 진짜 마을 풍경

산타마을 시즌엔 기차 안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고, 산타복을 입은 안내원이 사진을 찍어주며 아이스크림을 나눠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봄날의 기차 안은 조용했고 기차는 분천역에 도착 후 잠깐 멈췄다가 무심히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역에서 마을 방향으로 걷다 보면 소천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그 옆 산책로는 오프시즌에도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산타마을 입구를 통과하면 양쪽으로 멋진 산타할아버지 동상과 포토존이 늘어서있고 문을 닫은 푸드 트럭들도 있었습니다. 30분쯤 걸어가면 산타 우체국이 나오는데 산타에게 엽서를 보내면 답장을 받을 수 있는 행사를 하였으나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행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최근에 엽서를 쓰고 간 듯  2장의 엽서가 있었는데, 하나는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이라는 부모의 소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험 붙게 해 주세요”라는 글이었습니다. 비어 있는 관광지에서 오히려 사람의 흔적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마을 어르신 분은 겨울엔 시끌벅적하지만 조용한 지금이 진짜 우리 동네 모습이라며  웃으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관광지로서의 분천이 아닌, 마을로서의 분천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오프시즌 분천 여행, 이렇게 하면 좋습니다

사람 없이도 여행이 가능한 곳, 그게 분천입니다. 오프시즌이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몇 가지 있습니다.

  • 기차 이용: 청량리-영주-분천 구간은 하루 4~5편, 시간표 확인 필수
  • 기차역 카페: ‘산타우체국’ 컨셉으로 운영되던 철도 카페는 시즌 외엔 문이 닫혀 있지만, 역사 내부 대기 공간은 사용 가능
  • 소천천 산책: 왕복 1시간 거리, 걷기 좋고 봄엔 진달래와 개나리 가득
  • 벚꽃 시기: 4월 중순 전후로 역 앞 도로에 벚꽃이 피면 아주 예쁨
  • 숙박: 근처 마을에 민박 몇 곳 있음. 당일치기도 가능
  • 준비물: 간식, 보온물병, 얇은 바람막이 필수. 근처 편의점 없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대를 내려놓고 ‘마을 자체를 보는 마음’입니다. 손 흔들며 관광객과 사진 찍어 주는 산타도 없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없지만, 그 자리에 오히려 봄빛, 사람의 숨결, 동네 개 짖는 소리, 바람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반짝이는 장식도 좋지만, 그 뒤편에 남겨진 그대로의 마을, 장식 없는 풍경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산타마을이 아닌, ‘그냥 분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역. 계절 외의 시간 속에서 오히려 더 진짜 같은 사람과 공간을 만나는 여행이었습니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캐롤이 들려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봄날의 산타마을은 매일매일이 축제 분위기였던 겨울 산타마을의 차분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