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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키팅기 여행, 모계 사회와 민속 문화

by parttime1 2025. 7. 16.

천연 천 염색하는 여인들
천연 천 염색하는 여인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서쪽 고원지대에 자리한 부키팅기(Bukittinggi)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흔치 않은 모계 중심 사회인 미낭카바우(Minangkabau)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입니다. 이곳은 전통 목조건축, 민속 의례, 소규모 시장과 공예 마을, 그리고 여성 중심의 사회구조를 통해, 인류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여행지를 제공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관광 위주의 콘텐츠에서 벗어나, 가족, 문화, 전통이 일상에 스며든 로컬의 삶을 중심으로 부키팅기의 진면목을 소개합니다. ‘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깊은 여행을 원하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여정입니다.

미낭카바우 모계사회 – 어머니가 집을 잇는 구조

부키팅기를 대표하는 가장 독특한 사회문화적 특징은 바로 모계제(Matrilineal Society)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대체로 남성 중심의 무슬림 문화가 강하지만, 미낭카바우 지역에서는 가문, 재산, 주택, 성(姓)까지 모두 어머니 쪽을 따라 계승합니다.

여성은 결혼 후에도 친정에서 살아가며, 남성은 아내 집에서 ‘머무는’ 존재로 여겨지곤 합니다. 이 구조는 억압적인 가부장제가 아닌, 협력적 공동체로 발전해 왔고, 여성은 경제·의사결정·종교 행사에서도 주도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도시 외곽의 바랑루루 마을(Balairung)을 방문하면, 이런 구조가 일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생생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통 가옥인 루마가다(Rumah Gadang)에서는 한 가족의 여러 세대 여성들이 함께 살며, 방 배치부터 주방 사용, 가족회의까지도 모두 여성이 주관합니다.

특히 여행자로서 인상 깊은 점은, 외부인은 단순히 구경꾼이 아닌 초대받은 손님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입니다. 현지 주민들은 그들의 삶을 ‘설명’하기보다 ‘함께 체험’하게 해주려 합니다. 부키팅기의 모계사회는 관찰이 아니라 체류로만 느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민속시장과 일상의 철학 – 여성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문화

부키팅기의 중심가에는 매일 열리는 파사르 아테(Pasar Ateh)라는 전통시장이 있습니다. 이 시장은 단순히 생필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 교류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각 마을에서 온 여성들이 손수 만든 천, 약초, 향신료, 전통 떡을 들고 나와 사고팔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장 안쪽에는 바틱 천이나 송켓 직물, 미낭카바우 전통 금실 자수 제품 등을 파는 구역이 따로 있으며, 구매자는 제품보다 ‘누가 만들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름 모를 여성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공예품은 상품이기 이전에 ‘가계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전통은 단순히 민속적이거나 예술적인 수준을 넘어, 사회 구조의 유지와 교육 역할까지도 합니다. 시장은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체를 연결하는 ‘공공 네트워크’ 역할을 하며, 어린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협상, 언어, 공동체 예절을 배우게 됩니다. 특히 여행자들에게 추천되는 체험은 천연 천 염색입니다. 잎과 뿌리에서 색을 우려내어 천에 무늬를 찍는 이 과정은 단순한 만들기 체험이 아니라, 지역 여성의 삶의 리듬에 스며드는 시간입니다. 부키팅기의 시장은 물건보다 ‘삶의 방식’을 사고파는 공간입니다.

전통 가옥과 문화 공연 – 공간에 새겨진 역사와 공동체

부키팅기 외곽에는 사원보다 더 눈에 띄는 구조물이 있습니다. 바로 ‘소처럼 구부러진 지붕’을 지닌 루마가다(Rumah Gadang) 전통 가옥입니다. 지붕이 위로 솟은 곡선은 소의 뿔을 형상화한 것으로, ‘강하지만 부드럽게’라는 공동체 철학을 상징합니다.

루마가다는 공동체 거주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며, 결혼식, 장례식, 성인식 등 모든 의례의 중심지로 활용됩니다. 여행자도 일정 시간 사전 예약을 통해 이곳에서 열리는 란다이(Randai) 전통 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란다이는 연극·무용·무술·음악이 결합된 미낭카바우식 공연 예술로, 각 마을마다 전승자들이 있어 구술 역사와 공동체 가치를 공연으로 전달합니다.

마을에서는 매년 7~8월 ‘토리 고위(Tari Goweh)’ 축제도 열립니다. 여성들이 한복판에 서서 몸짓과 노래로 자연과 공동체에 감사하는 이 행사에는 외부인도 초청되며, 현지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장식과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집니다.

이곳의 공연은 삶의 일부이며, 지역 전체가 무대가 되는 경험입니다. 부키팅기에서는 문화가 박물관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문화 속에 살고 있고, 우리는 그것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부키팅기는 전통이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드문 도시입니다. 모계사회 구조, 민속 시장의 인간적 교류, 전통 가옥의 실재적 기능, 그리고 살아 있는 공연문화까지. 이곳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동참하는 여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발리나 족자카르타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깊고 조용하게 감각을 흔들어 놓는 곳. 자연스럽고 느린 속도 속에서 '여행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도시, 그것이 바로 부키팅기입니다.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색다른 하루를 살아보고 싶다면, 부키팅기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려보십시오. 당신은 그 문 안에서 ‘환영받는 손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