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중부 사막의 관문 도시 카샨(Kashan)은 흔히 ‘장미수의 도시’라 불립니다. 그러나 이곳의 진짜 매력은 단순한 향이나 정원에 있지 않습니다. 카샨은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생활 방식을 만들어낸 전통 기술의 보고입니다. 바람을 불러들이는 바드기르(바람탑), 중정과 저수조를 통한 패시브 냉방, 그리고 해마다 봄에 절정을 맞는 장미수 증류와 축제는 카샨이 사막에서 어떻게 삶을 이어왔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여기에 상인저택과 카펫·타일 공예가 어우러지며 도시 전체가 생활과 미학의 결합체로 존재해 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바드기르의 과학, 장미수 산업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카샨 상인저택이 보여주는 미학적 경제 구조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바람을 집 안으로: 바드기르와 중정의 과학
카샨의 기후는 여름에 40도 가까이 오르는 고온과 겨울의 혹한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사막성 기후입니다.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바드기르(windcatcher)라 불리는 독특한 건축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바드기르는 높게 솟아오른 탑 구조로, 외부의 바람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내부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여 자연스러운 냉방 효과를 얻을 수 있게 했습니다. 공기는 탑 내부의 통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차갑게 식고, 집 안의 중정으로 유입되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합니다. 이는 전기가 없던 시대에도 집안의 온도를 낮출 수 있었던 지혜로운 기술입니다. 중정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넓은 안마당에 심어진 나무와 설치된 작은 연못은 공기의 습도를 높이고, 강렬한 햇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대체로 카샨의 전통 가옥은 외부에는 창이 거의 없고, 내부 중정으로만 열려 있습니다. 이는 사막의 뜨거운 바람과 모래폭풍을 차단하면서도 집 안에서는 녹음과 물소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구조였습니다. 특히 핀정원(Fin Garden) 같은 대표적인 페르시아 정원은 이러한 중정 개념이 극대화된 사례로, 인공 수로와 분수, 나무 그늘이 조화를 이루어 도시 한가운데서도 시원한 공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바드기르와 중정은 단순한 건축 장식이 아니라 기후 적응형 생활 기술의 정수였습니다. 이 두 가지는 결합하여 자연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지속가능한 건축의 원형을 보여주며, 오늘날에도 친환경 건축과 도시 디자인에서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장미수의 도시: 증류·축제·유통
카샨을 대표하는 또 다른 얼굴은 장미수(rosewater)입니다. 매년 5월에서 6월 사이, 카샨 인근 캄사르(Qamsar)와 니아사르(Niasar) 마을에서는 장미 꽃잎을 따서 증류하는 축제가 열립니다. 수천 명이 모여 꽃잎을 따고, 전통 방식으로 구리 솥과 긴 관을 이용해 장미수를 만듭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생산 활동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하는 문화적 행사로, 관광객과 학자들까지 끌어들입니다. 증류된 장미수는 음료나 디저트, 약재, 종교의식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메카의 카바 신전을 세정하는 데 사용될 정도로 종교적 의미도 큽니다. 경제적으로 장미수는 카샨 지역의 중요한 산업 자원이자 수출품입니다. 증류 시즌 동안 생산된 장미수는 이란 전역은 물론 해외로도 판매되며, 카샨의 지역경제를 지탱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생산 과정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수백 년 전과 동일한 전통 방식으로 증류하고, 일부는 현대 장비를 활용해 대량 생산합니다. 하지만 축제 자체는 여전히 공동체의 협력과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장미수 산업은 단순히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 그치지 않습니다. 카샨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문화적 매개체이며,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도 합니다. 봄철 증류 시즌이 되면 수많은 방문객이 몰려들고, 숙박업·식당·기념품 산업까지 활기를 띱니다. 따라서 장미수는 카샨의 자연과 문화, 경제를 동시에 잇는 핵심 연결 고리라 할 수 있습니다.
카샨 상인저택과 미학의 경제
카샨의 도시 풍경을 거닐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상인저택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보루제르디 하우스(Borujerdi House), 타바타바이 하우스(Tabātabāei House), 술탄 아미리 하우스(Sultan Amir Ahmad House) 같은 저택들이 있습니다. 이 저택들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상업과 미학이 결합된 도시경제의 산물이었습니다. 대개 카펫 무역이나 수공업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가문을 위해 지은 집으로, 건축 자체가 하나의 자산이자 위신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들 저택은 정교한 스투코 장식, 색유리 창, 타일 무늬, 넓은 안마당과 분수, 그리고 바드기르까지 결합된 복합적 공간입니다. 특히 내부 벽면에는 꽃무늬와 기하학 패턴이 가득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란 특유의 장식미를 드러내는 동시에 가족과 손님을 맞이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미학이 단순히 ‘사치’가 아니라 지역 경제와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건축 장식에 쓰이는 타일과 카펫, 석고 장식은 모두 지역 장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졌으며, 이는 곧 카샨 경제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또한 카샨은 가내 수공업 전통이 강한 도시였습니다. 카펫과 직물, 도자기, 타일 공예는 저택과 시장을 통해 활발히 거래되었고, 장인 길드가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카샨은 ‘상인 도시’이자 ‘장인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경제와 미학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강화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했습니다. 오늘날 관광객들은 이 저택들을 방문하며 단순한 건축미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과거 상인 계층이 어떻게 기후 적응형 기술과 예술, 경제를 결합했는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카샨이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보여주는 공간임을 말해줍니다.
카샨은 사막 기후라는 제약 속에서 바람을 길들이고, 물을 활용하며, 장미꽃을 향수와 경제 자원으로 바꿔낸 도시입니다. 바드기르와 중정은 건축의 지혜를, 장미수 증류는 공동체의 협력과 축제를, 상인저택은 경제와 미학의 결합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친환경 건축과 지역경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카샨이 던지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행자는 카샨에서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