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 도시는 여전히 잠들어 있지만 어시장은 이미 하루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흔히 여행은 낮의 풍경을 전제로 하지만, 이 글은 시간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보려 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그 짧은 시간에만 존재하는 어시장의 리듬을 따라가 봅니다. 관광객이 오기 전, 해가 뜨기 전, 상인과 어부만이 오가는 시장은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해뜨기 전, 시장은 이미 바쁘다
포항 죽도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 40분. 시장 주변은 아직 가로등에 의지한 채 어둡지만, 시장 내부는 대낮처럼 밝습니다. 큰 수조에는 살아 있는 광어와 도다리가 빠르게 헤엄치고, 해산물 바구니를 머리에 인 상인들이 소리 없이 움직인다. 새벽의 시장은 고요하지만 분주합니다. 이 시간대는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시장에선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어선들이 밤새 잡아온 생선을 트럭에 싣고 도착하는 시간, 중도매인들이 이를 분류하고 경매를 준비하는 시간, 소매상인들이 그날 판매할 생선을 고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물류는 최소한의 동선으로, 최대한 빠르게 움직입니다. 바닥은 물로 흥건하지만 누구도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수조 정리, 경매 줄 세우기, 손수레 정비까지 일사불란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건 ‘눈짓’입니다. 거래 대부분이 말 없이 이루어집니다. 상인과 중도매인이 눈빛과 손동작으로 가격을 주고받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오전 6시 이전에 끝이 납니다. 이후 시장은 관광객과 지역 주민이 북적이는 또 다른 풍경으로 바뀌고 그곳은 이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장의 모습이 됩니다. 하지만 진짜 시장은 해뜨기 전의 그 장면 속에 있습니다.
살아 있는 시간, 비가시적 노동의 기록
어시장의 새벽은 단순히 빠른 시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루를 전부 담고 있는 농축된 시간입니다. 새벽 4시, 가장 먼저 움직이는 이들은 '경매사'입니다. 어획량과 품질을 기준으로 가격을 정하고, 그것을 중도매인에게 나눕니다. 이때 실수는 하루의 손해로 직결되기에 모든 감각이 총동원됩니다. 경매사들은 말보단 눈으로, 계산보단 감으로 이 시간을 컨트롤합니다.
두 번째로 움직이는 이들은 '트럭기사 겸 상인'들입니다. 이들은 어촌계에서 직접 생선을 공수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1톤 트럭에 얼음을 채우고 수조를 싣고, 지역을 돌며 주문한 점포에 물건을 배달합니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운영되며, 남편이 운전하고 아내가 검수와 전달을 담당합니다. 이렇게 가족은 매일 새벽 2시에 출발해, 오전 7시 전까지 전국의 어시장 2~3곳을 돌아가며 방문합니다.
이들의 노동은 누구도 보지 못합니다. 매체에 비치는 ‘맛집’과 ‘활기찬 시장’ 이면에 있는, 비가시적 노동입니다. 이 시간대에는 다툼조차 없습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말할 새도 없이 일을 하고, 눈으로 약속하고, 손으로 정리합니다. 이 공간은 비정형적이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각자의 정밀한 루틴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혼돈 속의 정확성’이란 말이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여행자가 바라본 새벽 시장의 가치
이 시장을 여행지로 바라보는 건 일반적인 시선은 아닙니다. 관광객은 보통 오전 10시 이후 도착해 생선구이를 먹고, 기념품을 사니까요. 그러나 해가 뜨기 전의 시장을 본다는 건 전혀 다른 접근입니다. 그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여행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장소 중심 여행에 익숙하지만, 이 경험은 여행의 시간대가 핵심입니다.
새벽 어시장은 사람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물이 고이고, 손이 움직이며, 생선이 지나간 자리에 비닐이 쌓입니다. 말이 거의 없고, 냄새와 습도, 발걸음 소리만 남아 있습니다. 이 안에서 여행자는 관찰자가 됩니다. 물건을 구매하지 않아도, 풍경을 찍지 않아도, 이 풍경 그 자체가 감각으로 남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경험이 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새벽 시간에 어시장까지 찾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고, 이 시간대에 접근하려면 전날 밤부터 동선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 안에서, 가장 진짜 같은 지역의 리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역의 삶을 이해하는 여행, 그리고 그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방식은 이 짧은 새벽 시간대에 가장 잘 담겨 있습니다.
새벽 어시장을 여행한다는 건 단지 빠른 아침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하고, 일상이 시작되기 전의 리듬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이 짧고 밀도 높은 시간 속에 담긴 삶의 구조는 우리가 관광으로는 절대 마주하지 못할 진짜 여행의 감각입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새벽 3시에 시장을 열고, 트럭을 몰며, 눈빛으로 가격을 정하고, 말 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난다면, 그들의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습니다. 새벽은 빛보다 빠르고, 소리보다 조용한, 진짜 도시의 시작점입니다. 그 시간을 걷는 여행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