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서양의 한가운데, 해류와 바람이 엇갈리는 지점에 세인트헬레나 섬이 있다. 면적은 서울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세계사의 거대한 서사가 이곳에 갇혀 있다.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 문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유배의 섬이다. 영국 본토에서 배를 타고 두 달 넘게 항해해야 닿는 이곳은, 인간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다. 그래서 세인트헬레나는 단순한 지리적 고립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어디까지 고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지금도 섬은 놀라우리만큼 조용하다. 파도 소리와 새 울음만이 들리는 언덕을 걷다 보면,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패배한 황제, 인간으로 돌아가다
1815년 워털루에서 패한 나폴레옹은 다시는 유럽 땅을 밟지 못하도록 영국군에 의해 세인트헬레나로 보내졌다. 유럽 열강은 그를 위험한 인물로 여겼고, 세상과의 모든 연결을 끊었다. 나폴레옹은 섬의 고원지대 롱우드 하우스에 머물며 철저히 감시받는 삶을 살았다. 기후는 습했고 바람은 세찼으며,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정원을 거닐고, 비서에게 자신의 회고록을 구술했다. 그 기록은 훗날 《생트헬렌의 회상록》으로 정리되어 제국의 신화가 되었다. 그가 직접 남긴 메모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세계를 잃었지만, 사유를 얻었다.” 이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권력에서 벗어난 인간의 내면 고백이었다. 황제의 초상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은 것은 한 사람의 인간, 그리고 역사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었다. 오늘날 롱우드 하우스를 찾으면, 그가 사용하던 침대와 책상, 작은 잉크병이 남아 있다. 벽에 스며든 습기 자국조차 그 시절의 고독을 기억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끝없이 넓지만, 그에게는 세상과의 장벽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세인트헬레나는 그렇게 한 인간의 몰락과 사유가 공존한 공간으로 남았다.
제국의 흔적과 섬의 시간
세인트헬레나의 역사는 나폴레옹 이전에도 길다. 1502년 포르투갈 탐험가가 처음 발견했고,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이 차례로 점령했다. 17세기에는 동인도회사가 인도항로의 중간 기착지로 삼으면서 섬은 잠시 번영했다. 제임스타운 항구에는 향신료와 차, 면직물, 노예가 오갔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자 항로는 북쪽으로 바뀌었고, 세인트헬레나는 다시 세상의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 이 섬은 산업화의 흐름을 피해 거의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게 되었다. 지금도 제임스타운의 골목을 걸으면 석조 건물과 오래된 영국식 간판, 가파른 699개의 제이컵 계단이 남아 있다. 계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좁은 계곡 사이에 박힌 도시가 마치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듯하다. 섬사람들은 자신들을 ‘세인트스’라 부른다. 이들은 영국식 억양을 쓰지만, 조상 중에는 아프리카·인도·중국계가 섞여 있다. 대서양 무역의 복잡한 역사가 그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은 셈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고립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립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주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과 떨어져 있었기에, 서로를 지킬 수 있었다.” 한 노인의 말이다. 나폴레옹의 유배가 강제된 것이었다면, 세인트스의 고립은 선택에 가까웠다. 그들은 천천히 살며, 자연과 더불어 생존해 왔다.
고립이 가르쳐주는 느림의 철학
세인트헬레나를 여행하는 일은 단순히 나폴레옹의 흔적을 찾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속도를 비우는 경험’이다. 공항이 생긴 것도 2017년, 여전히 항공편은 주 1~2회뿐이다. 배로 오는 여행자는 며칠간 파도 위에서 자신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섬에 닿으면 인터넷도 약하고, 밤에는 별빛이 도시의 조명을 대신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여행자는 자연스럽게 ‘고립의 의미’를 체험한다. 롱우드 하우스를 둘러본 뒤, 나폴레옹의 묘가 있는 밸리 오브 더 토머스 숲길을 걸으면,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이 동시에 느껴진다. 묘비에는 이름이 없다. “그가 누구였는지, 굳이 새길 필요가 없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곳의 고요함은 장식 없는 위엄을 품고 있다. 섬 주민들은 가끔 그 길을 산책하며 묵념을 한다. 그들에게 나폴레옹은 단지 침략자가 아니라, 인간의 유한함을 보여준 상징이다. 섬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소규모 게스트하우스와 농장을 운영하며 ‘슬로 트래블’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자가 많지 않아 상업화의 압력도 없다. 대신 방문객은 이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해풍이 스치는 언덕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세인트헬레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섬”이지만, 그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곳은 몸으로 알려준다.
세인트헬레나가 던지는 질문
나폴레옹의 유배 이후 200년이 흘렀지만, 세인트헬레나는 여전히 역사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주변성이 이 섬을 특별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인간은 본질적인 질문에 가까워진다. “권력은 무엇이며, 자유는 어디서 오는가?” 세인트헬레나는 그 질문에 대한 한 인간의 답을 담고 있다. 권력의 절정에서 몰락한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비로소 인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떠난 뒤에도 섬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세대를 이어왔다. 오늘날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은 단지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고립의 철학을 체험하기 위해 온다. 도시의 소음과 디지털의 속도로부터 벗어나,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황제가 느꼈던 고독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것이다. 세인트헬레나는 여행지이기 전에 ‘생각하는 공간’이다. 그 고요한 언덕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명과 인간, 성공과 몰락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 섬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른다. 오후의 햇살이 제임스타운의 붉은 지붕 위를 스치고, 바람이 롱우드의 정원을 흔들면, 마치 과거와 현재가 한순간 겹쳐지는 듯하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한숨이 바람 속에 남아 있고, 그 고요함은 아직도 섬을 감싼다. 세인트헬레나는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땅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마주할 때 어떤 사유가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그래서 이 섬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세인트헬레나는 ‘유배’라는 단어를 새로운 의미로 바꿔놓았다. 그것은 처벌이 아니라 성찰의 기회, 단절이 아니라 회복의 과정이었다. 나폴레옹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제국의 잔재가 아니라, 인간의 고독을 품은 자연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연이 세인트헬레나의 진짜 주인이다. 언덕 위에서 바람을 맞으면, 이 섬이 말없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들린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생각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