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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키 셰베케 창호와 카라반사라이 여행

by parttime1 2025. 8. 29.

아제르바이잔 카라반사라이의 성곽 일부
아제르바이잔 카라반사라이의 성곽 일부

 

 

아제르바이잔 북서부, 코카서스 산맥의 품에 안긴 셰키(Sheki)는 실크로드의 향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고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셰키는 단순히 옛 도시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업과 공예, 공동체가 어우러진 역사적 네트워크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와 유리를 맞물려 만드는 셰베케(shebeke) 공예와, 상인들의 숙소였던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는 셰키가 가진 독창성을 대표합니다. 오늘날에도 이 도시는 꿀과 헤이즐넛, 슬로푸드 운동으로 새로운 경제적 활기를 이어가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사례로 주목받습니다.

셰키 칸 궁전과 셰베케 장인 기술의 계보

셰키의 상징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셰키 칸의 여름궁전입니다. 18세기 후반에 세워진 이 궁전은 화려한 벽화와 섬세한 장식으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창호를 채운 셰베케 공예입니다. 셰베케는 작은 나무 조각과 색유리를 정교하게 맞물려 완성하는 창문 공예로, 놀랍게도 접착제나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무와 유리만으로 이루어진 이 창문은 햇빛이 들어올 때마다 무늬가 바뀌며 공간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입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장인들의 수학적 감각과 기술적 정밀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셰베케 장인들은 대를 이어 기술을 전수하며, 지금도 셰키 시내에는 공방이 남아 있습니다. 여행자가 직접 공방을 찾으면, 장인들이 작은 나무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며 문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정교함은 단순한 ‘예술’의 범주를 넘어, 일종의 과학과 철학이 담긴 노동의 결과물로 느껴집니다. 셰베케는 단지 궁전 장식이 아니라, 셰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아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아제르바이잔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장인 길드의 체계적인 운영과 함께 도시 경제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카라반사라이가 지탱한 실크로드 비즈니스 모델

셰키는 실크로드 무역로의 요충지였습니다. 코카서스를 넘어 이란과 러시아,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었던 덕분에 수많은 상인과 여행자들이 셰키를 거쳐 갔습니다. 이들의 이동과 교류를 가능하게 한 시설이 바로 카라반사라이였습니다. 셰키의 카라반사라이는 18세기에 지어진 거대한 건물로, 외관은 요새처럼 견고하지만 내부에는 수백 개의 방과 마굿간, 창고가 갖춰져 있었습니다. 말과 낙타를 묶어두는 마당, 물품을 보관하는 아치형 창고, 상인들이 머무는 객실이 함께 구성되어, 단순한 숙소를 넘어 무역 네트워크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카라반사라이가 단순히 ‘숙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물품의 가격이 정해지고, 계약이 체결되며, 국제적 교류가 일어났습니다. 일종의 실크로드 경영학이 작동했던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셰키의 카라반사라이는 지금도 일부가 호텔로 운영되고 있어, 여행자는 당시 상인들이 묵었던 돌벽 방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과거의 무역 구조가 오늘날에도 어떻게 문화와 관광 자원으로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카라반사라이의 존재는 셰키가 단순한 작은 도시가 아니라, 광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기능했던 상업 거점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물류와 금융, 숙박과 정보 교환이 한 곳에서 이루어진 카라반사라이는 오늘날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의 원형이라 부를 만합니다.

현대 셰키 경제: 꿀·견과·슬로푸드

셰키는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는 도시는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셰키는 농업과 장인 산업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꿀과 헤이즐넛은 셰키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아제르바이잔 전체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서 나옵니다. 꿀은 코카서스의 다양한 꽃에서 채밀한 것으로 향과 맛이 진해 현지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또한 헤이즐넛은 유럽 시장으로도 수출되며, 지역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습니다. 셰키는 아제르바이잔의 슬로푸드 운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통 요리를 보존하고,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지속 가능한 식문화를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특히 ‘피티(Piti)’라는 전통 스튜는 셰키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양고기와 병아리콩, 채소를 점토 냄비에 넣어 천천히 조리한 요리입니다. 현지 식당에서 피티를 맛보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공동체와 시간이 빚어낸 맛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셰베케와 같은 장인 공예품은 단순한 전통산업을 넘어 관광과 연결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셰베케 공예품이나 전통 직물을 기념품으로 구입하며, 이는 장인들에게 지속적인 수익을 제공합니다. 이렇듯 꿀과 견과, 전통 음식, 공예품은 셰키가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실크로드 도시’로 불리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셰키는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지속 가능한 길을 모색하는, 살아 숨쉬는 도시입니다. 셰베케 창호의 정교한 기술, 카라반사라이의 무역 시스템, 그리고 오늘날의 꿀과 헤이즐넛 경제는 모두 셰키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드러냅니다. 실크로드의 향취와 현대적 생명력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도시는 여행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