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고산 마을 소프리스토에는 학교 종소리보다 먼저 아이들을 깨우는 마을의 리듬이 있습니다. 이곳 아이들은 교과서보다 먼저 빵 굽는 법, 물 긷는 길, 불 피우는 손길을 배웁니다. 놀이와 노동, 배움과 실천이 구분되지 않는 이 마을에서는 삶이 곧 교육이고, 교육이 곧 삶인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소프리스토의 아이들이 어떻게 배움을 체화하며 살아가는지, 도시 교육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자연 기반 공동체 학습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불 옆에서 배우는 시간
소프리스토 아이들은 일찍 일어납니다. 해가 뜨기 전, 부모가 장작을 나르는 사이 아이들은 물통을 들고 언덕 아래의 우물로 향합니다. 이 작은 노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심부름이 아닙니다. 언제 얼음이 어는지,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통을 어깨에 어떻게 올리는지까지 모든 과정이 배움이자 반복 훈련입니다. 불 피우는 시간도 그들에게는 수업의 한 부분입니다. 7살 된 리아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재가 날렸어요”라고 말합니다. 어른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관찰하고 몸으로 느끼는 방식입니다. 장작에 불을 붙이는 순서, 어떤 나무가 잘 타는지, 불길이 너무 세면 화덕이 깨진다는 것까지 아이들은 매일매일 몸으로 직접 겪으며 익힙니다. 이곳에서 불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관찰과 조율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입니다. 불 옆에서 배우는 시간은 책상 위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살아 있는 교육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이들이 이 시간을 과제나 숙제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물통을 들고나가고, 언니가 나무를 고를 때 동생은 그 곁에서 나무껍질을 벗깁니다. 불이 꺼지면 그날 빵은 실패하기에,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진지함과 책임이 서려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내가 없다면 마을의 리듬이 멈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공동체 안에서의 존재감을 체득합니다. 그 경험은 어떤 칭찬보다 강력한 동기이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실질적 교육입니다.
손으로 익히는 문장들
도시의 교육은 종이 위에서 시작되지만, 소프리스토의 아이들은 손으로 먼저 배웁니다. 빵을 반죽하는 법, 치즈를 가는 법, 도구를 나르는 법 등 어린 시절부터 손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지며 기술 이전의 감각을 익힙니다. 예를 들어, 9살 소년 미샤는 반죽이 “물처럼 흐른다”와 “흙처럼 뭉친다”의 차이를 말로 설명하지 않는 대신 손으로 직접 눌러보며 알아냅니다. 어른들이 “딱 좋아”라고 말하는 순간을 스스로 체득하며, 어느 순간 자신도 “지금 넣으면 돼요”라고 말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배움은 경쟁이 없습니다. 순서를 다투거나, 결과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같이 하는 일’ 안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함께 움직이며 배우는 것, 그것이 이 마을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이 배운 것을 마을의 질서와 연결된 기술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반죽을 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빵’을 만드는 일이라는 자각, 이것이 이곳 아이들의 성숙함을 설명해 줍니다.
놀이와 일 사이의 경계가 없는 배움
소프리스토에서는 ‘공부’와 ‘일’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장작 더미를 넘으며 숨바꼭질을 하고, 물동이를 들고 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빵을 굽는 동안 조약돌로 장난을 칩니다. 놀이 안에 일이 있고, 일 안에 배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쓸모 있는 일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물을 길어야 오늘 빵을 만들 수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자기 몫이 마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알고, 그걸 기꺼이 해내며 아이들은 마을의 일원으로 성장합니다.
학교도 물론 존재합니다. 하지만 학기 중에도 아침과 저녁, 주말에는 늘 마을의 일에 참여합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조지아어와 수학이 실제 생활의 결정에 연결되는 방식은 도시 교육이 갖지 못한 실용성이기도 합니다.
이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어른을 모방하면서 자라지 않고, 어른의 일부로 자랍니다. 그 경계가 흐려질수록, 배움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마을은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이루게 됩니다.
소프리스토의 교육은 사방이 막힌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학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이 교과서이고, 손이 연필이고, 불이 선생님이며, 삶이 시험장입니다.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지식보다 질서를 먼저 배우고, 경쟁보다 협업을 먼저 경험합니다. 우리가 소프리스토를 여행하며 진짜 마주해야 할 것은 전통 빵보다도, 화덕보다도, 그 곁에서 일하며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다음 세대의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