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국가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이 아닙니다. 그 속엔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녹아 있고, 도시가 생태를 품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다양한 나무와 연못, 바람과 철새가 흐르는 이 공간은 순천이라는 도시의 철학이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관광 명소를 넘어, 순천만 국가정원이 갖는 생태적, 도시적, 문화적 의미를 깊이 있게 짚어보려 합니다.
도시가 자연을 품는다는 것의 의미
순천만 국가정원을 단지 '예쁜 공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공간을 절반만 보는 일입니다. 이 정원이 탄생한 배경은 도시 확장과 생태 파괴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도시가 자연을 해치지 않고 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순천만은 원래 세계적 희귀 습지로, 갈대밭과 갯벌, 철새의 서식지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도시 팽창과 산업 개발 압력이 높아지며 이 습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순천시와 시민, 그리고 환경 단체가 함께 결단을 내립니다. 도시 개발 대신, 도시가 자연을 존중하고 물러나는 방식으로 ‘국가정원’이 만들어진 것이죠.
특히 눈여겨볼 점은 ‘정원’이라는 선택입니다. 이는 자연을 인간의 통제 하에 두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을 조율하고 리듬을 같이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문화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손이 닿았지만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은 이곳의 구조물, 산책로, 물길은 자연과 사람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순천만 국가정원은 단순히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버퍼존’ 역할도 합니다. 인위적인 개발로부터 순천만 습지를 보호하는 완충지대인 셈이죠. 즉, 이 정원은 자연보호와 도시 기능이 동시에 작동하는 사례로서, 국내 어느 도시보다 선도적인 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원과 사람 사이의 거리, 시민이 만든 공간
순천만 국가정원은 행정기관이나 기업이 주도한 인위적 개발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공간은 순천 시민들이 수십 년간 지켜온 습지의 결실이며, 시민들의 정체성과 철학이 녹아 있는 공간입니다.
순천에서는 환경을 지키는 일이 시민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원 내에 쓰레기통이 거의 없지만,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철새 관찰 교육을 받고, 중학생들은 갯벌 생태계 복원 활동에 참여합니다. 단지 관람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활과 이어진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입니다.
정원 한켠에 마련된 지역 정원사들의 전시 정원도 특별합니다. 대기업이 만든 화려한 조경이 아니라, 마을 단위의 조합이나 시민 단체들이 손수 가꾼 공간으로, 나무 하나, 돌 하나마다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정원들은 지역 어르신들의 손을 거쳐 매년 조금씩 바뀌며, 마치 정원이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성장합니다.
또한 ‘순천만 정원박람회’는 단지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그 공간과 운영 방식이 지역과 연결돼 지속 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습니다. 행사 후 방치되기 쉬운 전시공간을 시민 커뮤니티 정원으로 바꾸고, 청년 창업자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체험 공간으로 변모시킨 점은 다른 도시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이러한 모든 구조는 순천만 국가정원이 단순한 행정사업이 아니라, 생활 문화와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구축된 진정한 공공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관광지로서의 딜레마와 미래적 실험
물론 순천만 국가정원은 그만큼 인기 있는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봄과 가을, 연중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몰리면서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순천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적인 도시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시도는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설계입니다. 정원은 중심부 외에도 수변 산책로, 야외 공연장, 자연생태관, 습지학습장, 시민정원 등으로 구역이 나뉘어져 있고, 각 구역마다 유입 인원을 조절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계된 덕분에 사람들은 몰리지 않고 흩어지며, 정원 고유의 평온함이 유지됩니다.
또한 순천만 습지와 국가정원은 차량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동차, 자전거, 도보 중심의 이동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특정 시즌에는 입장 인원 제한을 두고 예약제로 운영하기도 하며, 생태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 해설가들이 관람객들에게 정원의 가치를 설명합니다. 이는 관광을 교육적, 문화적 체험으로 확장시키는 방식으로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지금도 실험 중입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식물군 조성, 생물 다양성 보전 프로그램, 지역 예술가와 협업한 미디어 아트 전시 등은 정원이 단지 조경의 공간이 아니라, 미래형 도시 생태 실험장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정원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에 ‘기후 위기 대응’, ‘도시 회복탄력성’, ‘시민 주도 지속가능성’ 같은 요소를 덧입혀 가는 이 모델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들에게도 하나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 철학이자, 미래 도시의 가능성을 품은 공간입니다. 관광지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와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실제로 구현했다는 점입니다. 다음에 순천을 찾는다면, 단순한 사진 명소를 넘어서 이 정원이 가진 배경과 의미를 함께 걷고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이 여행이 남다른 이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