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르가오 섬은 '필리핀의 서핑 수도'로 알려졌지만, 서핑 뒤에 숨은 로컬 사람들의 삶은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파도를 따라 떠오른 섬의 이면에는 자연에 기대 사는 공동체,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변화하는 해녀와 어부, 그리고 속도를 늦춘 삶의 방식이 존재합니다. 이 글은 관광 중심이 아닌 '서핑 너머의 시아르가오'를 소개합니다.
서핑 수도의 이면, 섬 아이들의 아침
시아르가오 섬의 가장 붐비는 시간은 새벽과 아침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 서핑 관광객의 물살 아래에는 조용히 하루를 준비하는 섬 아이들의 아침이 있습니다. 섬 동쪽 작은 어촌 부두에선 해가 뜨기 전부터 조개를 줍는 아이들과 바구니를 든 할머니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곳 아이들은 정규학교를 다니면서도 아침마다 바닷가를 지나 조개, 작은 게, 말린 해조류를 채취해 가정 경제를 돕습니다. 일부 마을에서는 학교 대신 ‘해상 교실’이라는 이동식 교육 모델이 운영되며, 물살이 센 날엔 수업이 취소되기도 합니다. 시아르가오의 관광 이면에는 여전히 날씨와 조수에 영향을 받는 삶이 존재하며, 이런 속도는 도시와 다른 시간의 개념을 보여줍니다. 관광 산업의 규모가 커졌지만 이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지역 공동체는 오히려 이 삶의 방식이 섬의 정체성이라 자부합니다. 서핑으로 시작된 유명세는 여전히 섬 바깥의 이야기이고, 내부에서는 자연의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고요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부 청소년들은 관광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전통 낚시법이나 수공예 기술을 배우며 섬 고유의 생계 방식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는 관광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자립 의지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의 섬, 변화에 적응하는 해녀들
시아르가오의 해녀 공동체는 이제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기후변화의 전초기지에서 살아가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섬의 해녀들은 세대별로 서로 다른 채취법과 수면 적응력을 갖고 있으며, 특히 조수 변화에 따라 작동하는 독특한 채집 일정을 지닙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들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수온 상승과 불규칙한 조류, 그리고 바닷속 생태계의 변화로 해조류와 소형 연체동물의 수확량이 줄어들었고, 일부 해녀는 채집 방식을 바꾸거나 잠수를 포기했습니다. 이에 대응해 마을 여성들은 NGO와 협력하여 ‘해양 생태 모니터링팀’을 자발적으로 구성하고, 일상적으로 수온과 산호 상태를 체크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해녀들은 이제 단순한 채취자가 아니라 생태 관리자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관광객에게 해양 생태 변화와 전통 채취법을 설명하는 마을 프로그램도 진행하며, 자연과 함께 사는 방식이 단절되지 않도록 교육자의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시아르가오 섬의 해녀들은 기후 위기에 맞서는 현장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목소리입니다. 더불어 이들은 이제 해녀라는 정체성을 단순한 전통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생태를 읽는 전문가이자 지역 생태계 회복의 키 플레이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청년 세대에게도 해녀 기술을 전수하며, 기후 적응형 생계 방식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로컬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코로나19 팬데믹과 태풍 오데트(Odette)의 연속 타격에도 불구하고, 시아르가오 섬의 로컬 커뮤니티는 스스로 복구하고 일어섰습니다. 2021년 강력한 태풍이 섬을 강타했을 때, 대부분의 관광 시설은 폐쇄됐고 전력과 통신도 한동안 두절되었습니다. 하지만 로컬 주민들은 대피소를 운영하고, 공용 부엌을 만들어 공동 배식을 시행하며 자립적인 위기 대응 구조를 유지했습니다. 섬의 주요 도로와 주택은 주민들이 스스로 복구했고, 일부 마을은 관광객 대신 내부 순환 경제 모델을 실험했습니다. 코코넛 껍질을 활용한 연료, 빗물 저장 시스템, 수작업 어망 제작 등 소규모 생산으로 섬의 기초 인프라를 재구축한 사례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팬데믹과 태풍의 연속 경험은 관광 중심 경제의 취약함을 드러냈고, 섬 주민 스스로도 관광 외 생계 다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현재는 전통 농업·소규모 카페·공정여행 안내소 등 자생적 활동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이 섬은 ‘자연 재난 후 복구를 주도한 로컬 사례’로 국제적으로도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서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아르가오의 생존력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에는 섬 내부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재료를 이용한 마켓과 공동 조리 공간도 생겨나고 있으며, 이곳은 외부 지원 없이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섬 마을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시아르가오 섬은 더 이상 ‘서핑의 섬’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관광과 자연 사이, 변화와 생존 사이에서 이 섬의 사람들은 고유의 리듬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파도에 올라타기 전, 바다에 먼저 들어간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짜 시아르가오 여행의 시작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