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안데스 산맥의 4,000미터 고지대에 자리한 포토시(Potosí)는 단순한 도시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16세기 중반, 세로 리코(Cerro Rico)라 불리는 산에서 쏟아져 나온 은은 스페인 제국의 금고를 채우고, 유럽 경제의 심장을 뛰게 했으며, 심지어 중국 명나라의 화폐 유통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 도시에서 채굴된 자원이 지구 반대편의 물가를 흔든 이례적인 역사는 세계 경제사에서도 드문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 영광의 그림자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과 환경 파괴, 문화의 상흔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오늘날 포토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그 내부는 여전히 채굴의 손길과 생계의 고민 속에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데 얽힌 포토시의 이야기는 여행자를 단순한 관광객이 아닌 ‘역사 속 증인’으로 초대합니다.
은이 만든 도시, 세계를 움직이다
포토시의 이야기는 1545년, 원주민 목동이 세로 리코 산에서 은광맥을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스페인 식민정부는 곧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거대한 광산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규모였고, ‘엘 카미노 데 라 플라타(은의 길)’라 불린 운송망이 태평양 아카풀코 항과 대서양 세비야를 잇게 됩니다. 포토시에서 나온 은은 마닐라 갤리온 무역을 통해 아시아까지 흘러들어가, 중국의 은본위 화폐 제도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도시는 빠르게 팽창했습니다. 17세기 전성기에는 인구가 20만 명을 넘어, 당시 런던이나 파리보다도 컸습니다. 거리에는 36개의 교회, 궁전 같은 행정 건물, 그리고 수백 개의 은세공 공방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은으로 장식된 제단, 금실 자수 제복, 유럽에서 직수입된 유리와 도자기는 포토시의 부를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화려함 뒤에는 혹독한 ‘미타(mita)’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원주민 남성을 강제로 광산에 보내는 노동 징발 제도로, 하루 12~16시간의 고강도 노동이 이어졌습니다. 갱도 안은 환기와 조명이 부족했고, 붕괴와 유독가스 누출로 인한 사고가 빈번했습니다. 스페인 기록에 따르면 세로 리코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수백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런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은은 멈추지 않고 세계로 흘러갔고, “가치가 포토시와 같다”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도시 이름 자체가 부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은광의 그림자, 환경과 기억
포토시의 광산은 자연환경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은 제련에는 수은이 필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중금속이 인근 하천과 토양에 축적되었습니다. 이 오염은 수 세기 동안 지역 생태계를 위협했고, 지금도 일부 하천에서는 어류 개체 수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림은 제련용 목탄 확보를 위해 대규모로 벌목되었고, 고산지대 특유의 생태 다양성은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지질학적 위기도 심각합니다. 세로 리코는 500년 가까이 채굴되며 내부가 벌집처럼 비어가고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정상 부근에서 큰 함몰이 발견되었고, 전문가들은 산이 완전히 붕괴될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유네스코는 이를 이유로 포토시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채굴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이는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입니다. 포토시 주민 상당수는 광업에 의존하고 있어, 채굴 중단은 곧 생계 위기로 이어집니다. 이 딜레마 속에서 일부 폐광은 ‘광산 박물관’과 체험 관광지로 전환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은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실제 갱도에 들어가, 어두운 통로와 곡괭이 자국, 나무 받침대가 버티고 있는 불안한 천장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은 단순한 호기심 충족이 아니라, 그 안에 새겨진 노동자들의 역사와 희생을 느끼게 합니다. 이와 동시에 포토시 주민들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매년 ‘광부의 날’ 행사를 열고, 광부들의 수호신인 엘 티오(El Tío)에게 제물을 바칩니다. 이는 가톨릭과 원주민 신앙이 혼합된 독특한 종교문화로,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포토시의 현재와 미래
포토시의 도심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 건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 성당, 회색석 건물, 목조 발코니가 줄지어 있는 거리들은 400년 전의 공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은세공 장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기술을 현대적 디자인과 결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이 은세공품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예술적 매개체입니다. 관광산업은 포토시 경제 다변화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와 국제 NGO, 볼리비아 정부는 ‘산업 유산 관광’을 적극 지원하며, 광부 출신 주민들이 직접 해설사로 나서 관광객에게 역사와 문화를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지역 사회에 직접적인 수익이 돌아가고, 청년층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많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물 부족, 채굴로 인한 지반 불안정, 관광 수익의 불균형 분배 등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포토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관광 모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관광 수익 일부를 환경 복원과 지역 교육에 투자하거나, 채굴 중단 지역을 생태관광지로 재생하는 프로젝트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 ‘책임 여행(Responsible Travel)’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포토시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이 도시의 영광뿐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희생과 회복의 이야기를 배우고자 합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포토시는 단순한 과거의 상징에서 벗어나, 회복과 변화를 대표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포토시의 역사는 은빛으로 빛났지만, 그 빛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환경의 대가 위에 세워졌습니다. 오늘날 이 도시는 과거를 기억하며, 그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길을 찾고 있습니다. 여행자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지속 가능한 선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로 리코의 은은 더 이상 세계 경제를 움직이지 않지만, 포토시의 이야기는 여전히 세계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