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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드 생트마리, 해적의 섬에서 고래의 섬으로

by parttime1 2025. 8. 24.

혹등고래의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혹등고래의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마다가스카르 동쪽 해안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 일 드 생트마리(Île Sainte-Marie, 현지어로 Nosy Boraha)는 한때 인도양을 누비던 해적들의 은신처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섬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세계인들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매년 7월에서 9월, 남극에서 이동해 오는 혹등고래들이 이 섬 앞바다를 찾아와 번식과 양육을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와 현재의 생태적 풍요가 교차하는 이 섬은, 문화유산과 생태관광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항로·해적 유산의 흔적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인도양 무역로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중요한 항로였습니다. 일 드 생트마리는 이 항로의 중간 기착지로서 전략적 가치를 지녔습니다. 무역선과 군함이 오가던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이 섬은, 자연스럽게 해적들의 은신처로 선택되었고 실제로 수많은 해적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섬 북부의 ‘해적 묘지(Pirate Cemetery)’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소로, 수십 기의 묘비와 함께 당시 해적 활동의 실재성을 증언하는 장소입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윌리엄 키드(William Kidd), 올리버 르바수르(La Buse)와 같은 악명 높은 해적들도 이 섬을 거쳐 갔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이곳은 단순한 은신처를 넘어, 배를 수리하고, 전리품을 거래하며, 심지어 해적 사회가 형성되었던 ‘해적 공화국’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섬 주민들과 연구자들은 이 유산을 단순히 관광 자원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적의 섬’이라는 오명을 지역 정체성의 한 축으로 받아들이면서 역사적 교훈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해적 유적지를 돌아보며 단순히 전설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해양 교역과 식민주의, 그리고 비공식 해양 경제의 역사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과거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기보다, 그것을 통해 당시의 국제 질서와 지역의 역할을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고래·해양생물의 보전과 관광관리

일 드 생트마리의 오늘날 가장 큰 매력은 혹등고래를 비롯한 해양생물입니다. 매년 수천 마리의 혹등고래가 남극에서 약 5,000km 이상을 이동해 이곳 따뜻한 바다로 모여듭니다. 고래들은 이곳에서 짝짓기와 출산, 새끼 기르기를 하며, 이 시기 동안 관광객들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장관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 현상은 섬을 세계적인 고래관광지로 만든 핵심 자원이 됩니다.

하지만 고래 관광은 보존과 규제 없이는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나친 접근은 고래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선박의 소음과 충돌 위험은 개체군에 큰 위협이 됩니다. 이에 따라 마다가스카르 정부와 지역 운영 단체들은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관광 보트는 일정 거리 이상을 유지해야 하고, 하루 허용 선박 수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또한 지역 가이드들이 해양 생태 교육을 제공하여, 단순한 관람을 넘어 보존 의식을 높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입니다. 고래 관광의 수익은 단순히 외부 기업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어부들이 고래 관광 가이드로 전환하여 새로운 생계를 찾았고, 이는 어업 압력을 줄이는 동시에 공동체의 소득 다각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고래는 이제 섬 경제의 미래를 지탱하는 ‘살아 있는 자원’이 된 셈입니다.

문화재·생태관광의 균형 방안

일 드 생트마리가 특별한 이유는 해적 유산과 고래 관광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광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과거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현재와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모두 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축으로, 균형 있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문화재 보존 측면에서 섬은 해적 묘지와 고대 교회, 식민지 시기 건축물들을 보호하면서도, 지나친 상업화를 막고 있습니다. 단순히 ‘해적 관광 상품’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역사적 맥락과 교육적 의미를 함께 전달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생태관광에서는 고래뿐만 아니라 산호초, 해양 거북 등 다른 해양생물 보전까지 연계하여 관광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고래의 이동 패턴, 해양 생태계 변화, 기후 변화 영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관광객의 경험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이러한 연구와 보존 활동을 지지하는 하나의 참여 방식으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이는 관광이 곧 보존의 수단이 되는 순환 구조를 형성합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기반이 되어야한다는 점입니다. 섬 주민들은 과거 해적의 후손일 수도 있고,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어부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이익을 공유할 때, 문화와 생태는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 드 생트마리는 해적의 은신처에서 고래의 보금자리로, ‘어둠의 역사’에서 ‘생태의 미래’로 이어지는 특별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 섬은 과거의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보존하고 교육적 가치로 전환했습니다. 동시에 자연의 풍요를 책임 있게 관리하며 관광과 지역경제를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이 섬은 문화재와 생태관광의 균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오늘날 여행자는 이곳을 방문하며, 단순한 휴양이 아닌 ‘역사와 자연의 교차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는 힘으로 되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