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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 브랜드가 된 농촌 이야기

by parttime1 2025. 8. 8.

치즈가 접시에 플레이팅 된 모습
치즈가 접시에 플레이팅 된 모습

 

전북 임실은 대한민국에서 ‘치즈’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입니다. 고즈넉한 농촌 마을에 ‘임실치즈마을’이라는 이름이 붙고, 일년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치즈만들기 체험을 하기위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순한 먹거리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마을은 외래문화를 지역화한 대표적 성공 사례이자, 한국형 6차 산업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치즈를 통해 한국 농촌의 변화, 지역 브랜드의 힘,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만든 한 마을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스위스에서 온 사제, 한국 치즈의 뿌리를 심다

임실치즈의 시작은 1964년, 스위스 출신 가톨릭 신부 ‘디디에 세스테벤’ 신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가난했던 임실 지역 주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그는 본국에서 전수받은 치즈 제조 기술을 마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 작은 시작이 오늘날 ‘임실치즈마을’이라는 브랜드로 발전하게 된 배경입니다.

당시 한국은 우유 생산 기반조차 약했고, 치즈라는 식재료도 생소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세스테벤 신부는 젖소를 들여와 축산을 시작하고, 직접 치즈를 만들어 판 수익을 다시 주민들과 나누는 방식으로 ‘협동조합’ 운영을 시도했습니다. 이 방식은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니라, 공동체 정신과 교육, 자립이라는 더 깊은 가치를 담고 있었습니다. 현재 임실치즈마을에는 ‘임실치즈체험관’과 ‘치즈역사관’이 마련되어 있어, 세스테벤 신부의 삶과 철학, 초기 제조 과정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단위 체험객들은 이 곳에서 치즈만들기 체험을 하며 동시에 역사와 지역문화를 배울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치즈가 단순히 외국의 문화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지역 환경과 생산 구조에 맞춰 변형되고 지역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임실치즈는 지역의 기후, 목초, 젖소 품종에 따라 독자적인 맛과 품질을 갖게 되었고, 이는 곧 ‘임실’이라는 지명이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6차 산업의 모범 사례, 치즈가 만든 마을 경제

임실치즈마을이 관광지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특산물 판매가 아닌, 1차(농축산물 생산) → 2차(가공) → 3차(체험·관광)를 연결하는 이른바 '6차 산업'의 모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을의 구조를 보면 매우 체계적입니다. 우선 지역에서 생산한 우유가 ‘임실농협치즈공장’으로 들어가 제품으로 가공됩니다. 이후 이 제품들은 전국 유통망으로 공급되며, 동시에 마을 내에서 치즈 만들기 체험, 피자 만들기 체험, 치즈 퐁듀 시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소비자에게 전달됩니다.

치즈마을 내에는 ‘치즈피자체험장’, ‘임실치즈테마파크’, ‘치즈광장’ 등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계절별로 열리는 치즈축제, 전통놀이, 유럽풍 포토존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높은 만족도를 줍니다.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은 단순한 음식 체험을 넘어서, 농촌의 생활 방식과 먹거리 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실제로 임실군은 이 치즈마을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를 설계하고 있으며, 청년 농부 창업, 여성 농업인 일자리 창출, 마을 공동체 기반의 일거리 분산 등이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역 내에서 소득이 순환되도록 만든 지속 가능한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다른 농촌 관광지와의 가장 큰 차별점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관광형 농촌 마을이 외부 자본에 의해 단기 개발되고 소모되는 반면, 임실은 지역 주체가 운영을 이끌고, 내부의 생산-가공-소비-체험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자생력이 높습니다.

브랜드로 자리잡은 마을, 그 지속 가능성은?

‘임실치즈’라는 단어는 이제 치즈의 대명사처럼 쓰이지만, 그 브랜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합니다. 특히 외국 치즈 브랜드의 국내 진출이 늘고,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이 다변화되면서 임실도 새로운 대응 전략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전통적인 체다 치즈 외에도 스트링 치즈, 모짜렐라, 크림치즈 등 다양한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지역 농가와 협력하여 유기농 우유 기반 치즈도 개발 중입니다. 또한 치즈를 활용한 가공식품, 치즈디저트, 지역 카페 브랜드도 생겨나면서 ‘임실’이라는 이름이 단지 농업 브랜드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되고 있는 중입니다.

관광 측면에서도 임실은 치즈 외에 지역성을 살린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임실호수공원, 옥정호 드라이브코스, 전통시장 연계 프로그램 등은 방문객들에게 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며, '치즈를 매개로 한 복합 여행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마을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사람입니다. 세대를 거쳐 축적된 기술, 경험, 협동정신이 브랜드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젊은 층의 참여 또한 점차 늘고 있습니다. 마을의 이야기가 책으로, 전시로, 영상으로 확산되며,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농촌 문화 콘텐츠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실치즈마을은 한국형 로컬 콘텐츠가 세계적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자연과 사람, 역사와 먹거리, 체험과 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 마을은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하나의 '모델'입니다. 다음에 전북 임실을 찾게 된다면, 치즈의 맛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을의 시간도 함께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