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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에 다녀온 홍천 이야기

by parttime1 2025. 7. 23.

한국의 전통 시장
한국의 전통 시장

 

강원도 홍천군은 면적은 넓지만 인구 밀도는 낮은 전형적인 내륙형 지역입니다. 이 지역의 중심지인 홍천읍에서는 매월 3일, 8일, 13일 등의 날짜에 전통 장이 서며, 지역민들과 농민, 상인, 그리고 일부 여행자들이 이 리듬을 따라 한 곳에 모입니다.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한 이 장날은, 단순한 상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시간과 계절,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생생한 현장입니다. 서울과 불과 두 시간 거리의 이곳 장터는, 여전히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로컬푸드, 진열대 너머의 농가

홍천 장날의 핵심은 로컬푸드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단지 ‘지역에서 난 식재료’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판매자는 직접 재배하거나, 이웃 농가에서 직접 받아온 식재료만을 판매합니다. 상품은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진열되고, 가격표 대신 손글씨가 붙어 있습니다. 상인들은 제품에 대한 설명을 곧잘 덧붙이며, 수확 시기와 방법, 조리법까지 덤으로 알려줍니다.

강원도의 고랭지 환경에서 자란 채소는 짧은 성장 기간과 강한 일교차 덕분에 맛이 진하기로 유명합니다. 이곳에서 파는 열무, 감자, 상추는 수퍼마켓에서 파는 것보다 모양은 투박하지만 풍미가 짙습니다. 이른 아침, 농민들은 각자 트럭에 농산물을 싣고 장터로 들어옵니다. 어떤 이들은 할머니 손을 잡고 와서 고구마 몇 봉지를 사가고, 누군가는 직접 만든 나물 무침을 나눠줍니다.

포장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여행자들은 종이 봉투나 장바구니를 가져와야 합니다. 시장 한편에는 ‘포장재 없는 구역’이 표시된 간판이 있고, 일부 상인들은 고객에게 비닐 사용을 지양해 달라고 안내합니다. 로컬푸드라는 말은, 이 장날에서는 식재료 그 자체이자, 유통과 소비 방식까지 아우르는 실천적 개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의 감각, 여행자의 기록

홍천 장날은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을 넘어서,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입니다. 땅콩 볶는 냄새, 갓 지은 수수떡의 김, 철판 위에 올려진 도토리묵의 고소한 향이 뒤섞여 후각을 자극합니다. 소리도 풍성합니다. 가격을 흥정하는 목소리, 안부를 묻는 인사, 상품을 소개하는 상인의 설명이 교차하며 장터만의 리듬을 만듭니다. 이러한 리듬은 도시형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한복을 입은 상인이 팔고 있는 수공예 떡, 비닐 없이 쌓인 콩나물, 낡은 저울에 달아주는 고춧가루. 이 작은 장면들 하나하나가 지역의 고유한 문화이자, 여행자의 기록 대상이 됩니다. 어떤 상인은 매 장날마다 자신이 키운 농작물을 가져와서 구매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올해 비가 언제 왔고 감자가 얼마나 잘 됐는지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단지 상거래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를 나누는 행위로 여겨집니다.

여행자는 관찰자이자 참여자가 됩니다.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며, 어떤 리듬에 몸을 맞추게 됩니다. 어느새 계산은 느리고 대화는 길어지며 바로 이 점이 이 시장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음식의 냄새, 손의 감촉, 귀에 맴도는 사투리까지, 이 시장은 촉각적이고 감각적인 기록의 현장이 됩니다.

시장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태도

홍천 장날의 오랜 생명력은 상인들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이곳의 판매자들은 거래보다는 관계를 중시해서 낯선 여행자에게도 먼저 말을 걸고, 시식을 권하거나 어디서 왔는지를 묻습니다.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고객들에게는 계절마다 다른 음식을 추천하고, 판매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 공동체적인 관계 맺음의 일환입니다.

장터에는 특별한 장소도 존재합니다. 장날이 열리는 도로 주변에는 임시로 만든 야외 부스들이 설치되며, 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카페, 주민들이 운영하는 중고물품 코너도 열릴 때가 있습니다. 이들은 일회용품을 줄이고, 식재료 낭비를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합니다. 비록 장날은 짧은 시간 동안 열리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사회적 실천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관광지에서의 소비가 아닌, 일상의 관계 안에서의 소비. 이 시장은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줍니다. 여행자가 단지 소비자가 아닌, 관계의 일부로 편입되는 경험은 이 장날이 가진 가장 큰 가치입니다. 환경을 생각하며,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교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로컬푸드 여행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천의 장날은 짧고 느립니다. 아침 일찍 시작되어 오후 3시를 넘기면 대부분의 부스가 철수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는 농사, 계절, 사람, 음식, 감각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느리게 고르는 채소, 천천히 끓인 나물, 오래된 저울로 재는 쌀 한 되. 여행자는 여기서 '더 오래 보고, 더 천천히 소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장날을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시장 탐방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역을 존중하는 여행의 한 방식이고, 지속가능한 관광의 작은 실천입니다. 더 많은 이들이 이런 장터에서, 이런 관계 안에서 머물고 기억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곧 지역도, 환경도 함께 살리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