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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숙소에서 보낸 제주 하루

by parttime1 2025. 7. 22.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숙소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숙소

 

 

제주도 구좌읍은 성산 일출봉과 세화해변 사이에 자리한 조용한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제로웨이스트’를 내건 숙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친환경 인테리어가 아닌, 숙박의 구조 자체를 탄소중립에 가깝게 설계한 공간으로, 에너지는 태양광으로 충당되고, 식사는 채식 위주로 구성되며, 일회용품은 철저히 배제된 곳입니다. 이 글은 실제로 그런 제로 숙소에서 머문 하루를 기록한 것이며, 관광보다 체류, 소비보다 실천에 가까운 여행의 흐름을 전합니다.

전기 없는 밤, 햇빛으로 운영되는 숙소

숙소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전등 대신 천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었습니다. 건물은 남향으로 지어져 낮 동안 태양의 각도를 고려한 채광 구조를 갖추고 있었고  에너지원은 대부분 태양광 패널이며, 실내 온수도 태양열로 가열됩니다. 방마다 에어컨은 없는 대신 맞바람이 잘 통하도록 창문이 설계되어 있어서 여름임에도 실내 온도는 충분히 쾌적했습니다.

전기는 꼭 필요한 용도로만 제공됩니다. 숙소 안내서에는 ‘노트북 충전 가능, 드라이기 사용 불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공간을 더 집중해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낮에는 빛을 따라 움직였고, 해가 지자 어둠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전기 대신 낮의 움직임과 해의 위치에 따라 하루의 리듬이 결정되는 낯선 경험은, 현대적인 편의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살아보는 뜻밖의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방은 공용이었고, 인덕션과 전기포트는 시간제로 운영되었습니다. 쓰레기 분리배출도 엄격했고, 플라스틱류는 아예 수거 대상이 아니었기에 여행자들은 스스로 가져온 물건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작은 노력이 쌓이며, 공간 전체의 리듬이 정돈되고 있었습니다.

채식 식단과 로컬 식재료의 조합

숙소에서는 조식을 유료로 제공했습니다. 사전 신청한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으며, 메뉴는 날마다 달랐습니다. 내가 방문한 날 아침엔 들깨무국과 곤드레밥, 제철 나물이 나왔는데, 모두 인근 구좌읍 농장에서 직접 구입한 로컬 식재료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커피 대신 보리차, 우유 대신 두유가 제공되었고, 정제 설탕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식사는 실내가 아니라 마당에 놓인 테이블에 마련되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서, 바람을 느끼며 음식을 먹는 기분은 매우 생경했습니다. 여행에서의 식사가 ‘지역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닌 ‘지역과 조응하는 행위’로 느껴졌던 순간이었습니다. 로컬 식재료는 단지 건강한 식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동거리를 줄이는 탄소절감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개인이 직접 수거해야 했습니다. 남은 반찬은 다시 포장해 가져갈 수 있도록 천연소재 용기가 마련되어 있었고, 세척 후 반납도 가능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참여의 일환처럼 느껴졌습니다. 식사를 통해 지역의 기후, 농업, 맛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것이 여행의 핵심 경험으로 작용했습니다.

머무는 법을 다시 배우는 여행

이 숙소에서는 ‘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TV는 없고, 에어컨도 없으며, 일회용 슬리퍼나 비닐 포장도 제공되지 않습니다. 대신 작은 도서관이 있고, 마당에는 퇴비용 텃밭이 있으며, 비가 오면 빗물 저장 탱크에 빗물을 저장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자연스럽게 여행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왜 여기 머무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에게 답해야 했습니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 먹는 방법, 쉬는 태도 모두를 조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 조정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단순한 구조 안에서 더 많은 감각을 회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리, 냄새, 빛, 습도 같은 요소들이 점점 크게 다가왔습니다.

구좌읍은 관광 중심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 덕분에 ‘머무는 여행’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사려니숲길이나 종달리 해안도로처럼, 조용하고 걷기 좋은 길들이 많았습니다. 숙소에서도 자전거 대여가 가능했고, 자동차 없이도 2박 3일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탄소중립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머무는 방식의 변화였고, 소비하지 않는 태도의 선택이었습니다. 여행자는 잠시 스쳐가는 존재지만, 그 스침조차 환경에 흔적을 남깁니다. 이곳의 숙소는 그 흔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존재했고, 나는 그 노력을 잠시 빌려 썼을 뿐입니다.

 

‘제로숙소에서 보낸 제주 하루’는 관광이 아닌 체류였습니다. 전기가 제한되고, 음식이 단순하며, 이동이 느린 조건은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 제로 여행의 본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덜 쓰고, 덜 소비하며, 더 오래 바라보는 방식. 그것이야말로 환경을 생각하는 여행자의 자세입니다.

제주 구좌의 제로웨이스트 숙소는 하나의 완성된 모델이자 실험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실험은 더 많은 이들의 참여로 완성되어 각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의미 있는 여행을 꿈꾼다면 이곳의 하루는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