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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구담마을, 물 속에 남은 기억

by parttime1 2025. 7. 20.

 

구담 마을이 수몰된 제천 청풍호
구담 마을이 수몰된 제천 청풍호

 

 

제천 청풍면의 구담마을은 이제 지도에서도 찾기 어려운 마을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수십 개 마을 중 하나였던 구담은, 비록 수면 아래 잠겼지만, 그 안에 살아있던 사람들, 시간, 풍경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이 글은 그 기억의 조각을 모아, 구담이라는 마을이 사라졌지만 결코 잊히지 않았음을 기록하는 여정입니다.

수몰 전, 구담마을은 어떤 곳이었나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일대에 자리했던 구담마을은 충주호가 조성되기 전까지 농업과 자연 중심의 조용한 산촌 마을이었습니다. 이름 ‘구담(龜潭)’은 거북이가 연못에 몸을 담근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실제로 마을은 낮은 산들에 둘러싸인 반달형 분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논과 밭은 강을 따라 펼쳐졌고, 마을 사람들은 계절마다 고추, 콩, 옥수수 등을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당시 마을에는 약 30~40 가구가 모여 살았습니다. 중심부에는 자연 암반을 이용한 공동 우물이 있었고, 그 주변에 모여 사는 구조였습니다. 마을 오솔길을 따라 초등학교 분교, 작은 사당이 정겹게 이어졌으며, 이웃끼리 농사일을 함께 돕는 품앗이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외진 곳에 위치했지만, 주민들에게 구담은 ‘자연 속에 뿌리내린 안식처’였습니다. 큰길과 멀리 떨어져 외부인 방문은 드물었으나, 그만큼 공동체 안에서의 연결과 소통은 더 깊었습니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쌓여 외부와 단절되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땔감을 준비하고 장작을 쌓아 두며 겨울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이런 고립은 불편함이 아닌, 오히려 '우리만의 계절'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해마다 마을 제사를 함께 지내며 조상의 묘를 돌봤고,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썰매를 타며 놀았습니다. 구담은 외부에겐 낯선 곳이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충주댐과 함께 사라진 삶의 자리

1985년, 충주댐의 완공은 구담마을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수력 발전과 홍수 조절을 위한 국가사업으로 인해 청풍면 일대 수십 개 마을이 수몰 대상이 되었고, 구담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구담 주민들은 청풍면 외곽이나 제천시내, 또는 지정된 집단 이주지로 이전해야 했습니다. 정부는 보상과 이주 단지를 마련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삶터를 강제로 떠나는 데 대한 심리적 상실감을 크게 겪었습니다. 무덤은 대부분 이장됐으나, 지형상 정확한 위치 파악이 어려운 묘지는 이전하지 못하고 그대로 물속에 잠겼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집, 장독대, 마당의 감나무, 우물은 전부 철거되거나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지막 이주 전날, 집 앞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고, 분교 운동장에 모여 서로 작별을 나눴습니다. 그 사진들은 이제 제천과 서울에 흩어진 구담 출신 주민들의 가정에서 오래된 액자 속에 남아 있습니다.

물이 들어차며 마을은 빠르게 잠겼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한 주민은 “집이 물에 잠길 때, 마음이 같이 가라앉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을에 대한 기억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매년 1~2회 구담 출신 마을회가 모여, 청풍호 인근 정자나 전망대에서 옛 마을 방향을 바라보며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면 아래, 과거의 삶은 여전히 고요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억으로 남은 마을, 기록으로 이어지는 삶

구담마을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그 기억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최근 제천시와 지역 문화재단은 수몰지 기록화 사업을 통해 구담을 비롯한 청풍 수몰 마을들의 기록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구술 인터뷰, 옛 사진 복원, 지도 디지털화 등을 통해 마을의 흔적은 다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이 기록 프로젝트는 단순한 문화 콘텐츠를 넘어, ‘공동체의 기억 복원’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실제로 청풍호 수위가 낮아지는 겨울철이면, 구담마을의 일부 터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우물의 둥근 형태, 담벼락 일부, 돌계단 자리가 고요하게 모습을 보입니다. 이 광경은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착각을 줍니다. 관광객들이 아닌, 그 자리를 알고 있는 이들만이 찾아와 조용히 바라보고, 묵념을 하듯 시간을 보냅니다. 풍경은 없지만, 그곳에서 사는 동안 느꼈던 감각은 여전히 짙게 남아 있습니다.

이제 구담은 단지 수몰된 마을이 아니라, 기억되고 복원되는 ‘기억의 장소’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드론 촬영, 3D 모델링을 통해 가상공간으로 마을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며, 향후엔 구담을 포함한 수몰 마을을 하나의 기록 유산으로 엮는 전시 공간도 활발히 검토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단지 과거를 추억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억의 보존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구담마을은 더 이상 지도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수몰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공동체의 감각,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구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라진 마을을 추억하는 것을 넘어, 기록하고 남겨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담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살았던 삶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