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조지아 목동의 계절을 따라

by parttime1 2025. 7. 24.

목동들과 양떼
목동들과 양떼

 

푸른 능선과 구름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조지아 북동부의 고산 지대인 투셰티(Tusheti)에는 여전히 자연과 계절의 리듬에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목 목동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전기, 신호, 편의시설 없이도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며, 그만큼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땅과 하늘의 질서 속에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따라가며, '보이지 않는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인간의 원형'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길이 열리는 순간, 6월의 이주

조지아 투셰티 지역은 겨울이 오면 완전히 고립됩니다. 해발 2,800m에 이르는 아바노 패스(Abano Pass)는 10월부터 눈과 얼음에 뒤덮이며 폐쇄되고, 다시 개통되는 건 보통 5월 말~6월 초입니다. 이 시기, 목동 가족들은 남부 평지에서 트럭과 말을 이용해 투셰티로 오르는 계절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이 이동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1년 주기를 여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양 떼와 함께 움직이는 이들은 평균 3~4일에 걸쳐 거친 산길을 오릅니다. 길은 비포장이며 낙석과 낭떠러지가 도사리고 있어 매년 사고도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늘 같은 길을 택합니다. “이 길을 지나야 진짜 여름이 온다”는 말은 그들 사이에서 일종의 계절적 주문처럼 사용됩니다. 도착하면 각 가족은 투셰티 고지대에 미리 지어둔 돌집, 혹은 전통 천막에 들어갑니다. 이 공간은 그들만의 여름 집이자 노동의 기지입니다.

투셰티에 올라오면 목동의 역할이 곧 가족의 중심이 됩니다. 아버지는 양 떼를 이끌고, 어머니는 치즈를 만들며, 아이들은 땔감을 모으고 물을 긷습니다. 온 가족이 각자 맡은 역할을 책임져야 하며, 전기가 없어도, 도로가 없어도 모든 것은 돌아갑니다. 매일 해뜨기 전 일어나고, 해가 지기 전에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자연의 시간표는 결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풀과 시간, 치즈와 양의 관계

투셰티의 목동들은 하루의 절반을 풀과 함께 보냅니다. 양 떼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고산 초지를 뜯고, 목동들은 절벽과 계곡, 차가운 물이 흐르는 돌길을 따라가며 무리를 돌봅니다. 투셰티의 양은 다른 지역보다 작고 단단하며, 고산지에서 자란 풀을 먹어 육질이 탱탱하고 치즈의 향도 더 깊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든 치즈는 조지아 전역에서 가장 진귀한 식재료로 통합니다.

이들이 만드는 전통 치즈 '구다(Guda)'는 이름조차 양가죽 주머니에서 유래합니다. 양젖을 가마솥에 데워 천으로 걸러낸 뒤, 소금을 섞고 가죽주머니에 넣어 자연 숙성시키는 방식입니다. 전통 가옥의 시원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4~8주간 숙성시키면, 단단하고 진한 맛이 나는 치즈로 완성됩니다. 하루에 소량씩만 만들 수 있고, 그 모든 공정은 수작업으로 진행됩니다. 한 가족이 여름 한철 동안 생산하는 치즈는 200~250kg가량입니다. 목동의 삶은 치즈와 함께 흘러갑니다. 치즈를 만드는 손은 늘 불과 가까이에 있고, 화덕에서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삶의 냄새가 묻어납니다. 아이들도 중요한 노동력입니다. 물을 길어오고, 불을 피우고, 새벽이면 양 떼를 깨웁니다. 놀이라는 개념보다 '함께 하는 일'이라는 의식이 앞서 있는 이곳에서는 모든 연령대가 각자의 역할을 갖고 살아갑니다. 투셰티에서의 여름은 '살아있음'을 배우는 계절이자, 자연이 허락한 시간 안에서 자신을 훈련하는 시기입니다.

계절이 꺾이는 날, 다시 길을 내다

9월이 되면 고지대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아침마다 서리가 내리고, 양들의 호흡이 하얗게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투셰티 사람들은 '길이 닫히기 전' 준비를 서두릅니다. 치즈는 천으로 포장해 염소 가죽에 싸고, 말에 싣고, 일부는 사람 등에 짊어집니다. 양 떼는 아래 마을의 겨울 초지로 보내지고, 가축 수는 이 시점에 맞춰 거래되기도 합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 해를 정리해 나갑니다.

이동을 시작하는 날은 마치 축제 같기도 하고, 전쟁을 앞둔 것처럼 조용하기도 합니다. 부모들은 집 안의 조약돌과 도구를 정리하며 내년을 기약합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많은 감정을 동반합니다. 고생스럽고 위험한 이동이지만, 산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오기 전 산을 내려가지 않으면, 겨울은 감옥이 된다”는 말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아래 마을에 도착하면 가족은 다시 도시 생활 모드로 바뀝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복귀하고, 어른들은 치즈를 시장에 내다 팝니다. 짧은 여름이 끝났지만, 그 안에서 축적된 경험은 다음 해를 위한 준비로 바뀝니다. 투셰티에서의 한 계절은 단순한 시간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축적해 온 살아 있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외부인에게는 여행이지만, 이들에겐 전통 그 자체입니다.


조지아 투셰티의 목동은 자연의 시간과 몸의 리듬을 일치시키며 살아가는 현대의 유목민입니다. 그들은 이동하며 생산하고, 계절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따라가는 이유는 단순한 '이색 체험'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지낸 인간 본연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그곳에선 말보다 발걸음이 많고, 기술보다 손이 앞서며, 계획보다 계절이 먼저 움직입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삶의 또 다른 깊이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