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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소프리스토 빵의 시간

by parttime1 2025. 7. 24.

화덕애서 구워져 나오는 빵
화덕에서 구워져 나오는 빵

 

조지아 북부 고지대에 위치한 소프리스토(Sopristo) 마을. 이곳에서는 전기 오븐도, 냉장 장비도 없이 오로지 나무 장작과 화덕, 손의 기억으로 전통 빵을 만드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주 정해진 요일에 마을 여성들이 모여 반죽을 하고 불을 피우고 빵을 굽는 이 과정은 단순한 식사 준비가 아닌 공동체의 리듬이자 삶의 전통입니다. 이 빵은 밀가루와 물, 소금으로만 만들어지지만, 그 안에는 시간, 손, 기억, 계절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이 글은 그 소박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조지아 빵의 깊은 의미를 따라가며 음식 이상의 문화와 사람, 전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불을 준비하는 시간 – 하루가 시작되기 전의 노동

소프리스토의 빵 만들기는 이른 새벽, 해가 뜨기도 전부터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이들은 연장자들이다. 그들은 산등성이에서 미리 말려둔 참나무 장작을 이용해 마을 중심의 커다란 돌화덕에 불을 지핍니다. 이 화덕은 보통 세 개가 나란히 이어져 있으며, 돌 사이의 틈으로 열을 축적하는 구조입니다. 불을 준비하는 데만 1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누군가는 재를 긁고, 누군가는 바람을 불어넣고, 누군가는 물동이를 나른다. 장작이 탈수록 마을은 점점 활기를 띱니다. 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뛰어놀고, 중년 여성들은 그날의 순서를 조율합니다. 화덕의 온도를 맞추는 건 예민한 감각이 필요합니다. 온도계 없이, 연기 냄새와 불빛, 돌을 손으로 만져보며 “지금 반죽을 넣으면 딱 좋아”라는 한 마디로 타이밍이 정해집니다. 이 작은 결정 하나에, 오랜 세월의 감각이 쌓여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불을 '기계가 아닌 사람'이 다루는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게 이 마을 빵의 개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빵이 아니라 불을 기억하는 거랍니다.” 화덕의 온도를 살피던 80대 여성이 우리에게 건넨 이 말은, 이 마을의 요리가 아니라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밀가루 위의 이름 – 손으로 만드는 전통

불이 무르익을 무렵, 반죽이 등장합니다. 밀가루, 소금, 물. 단 세 가지 재료지만, 그것을 섞는 방식, 치대는 시간, 숙성하는 온도는 집집마다 다르고, 세대마다 다릅니다. 소프리스토에서는 빵을 만드는 방식이 ‘집안 고유의 언어’처럼 전수됩니다.

반죽을 치대는 손놀림은 예술 그 자체입니다. 팔뚝에 힘을 실어 밀고, 주무르고, 두드리고, 돌리고… 아무런 기계도 없지만 그 리듬은 기계보다 정교하다 할 수 있습니다. 빵이 아니라 시간을 반죽하는 거라던 한 여성의 말처럼,  그 손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 앞 세대의 손길이 모두 살아 있습니다.

반죽이 숙성되면, 대나무로 만든 길쭉한 막대기로 얇게 펴고, 둥글게 접고, 다시 펼쳐 화덕 벽면에 직접 붙입니다. 이는 인도 탄두리와도 비슷하지만, 소프리스토 특유의 반죽 질감과 구움 정도는 독자적입니다. 빵이 붙는 순간,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온 마을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이 과정에서 누구 하나 놀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함께합니다. 치대는 법을 배우고, 불을 다루는 손길을 기억하는 그것이 바로 이 마을만의 ‘교육’입니다.

함께 나눈 빵의 온도 – 한 마을의 식탁

빵이 익는 시간은 약 20분. 하지만 그 20분은 결코 조급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물을 길고, 담소를 나누며 오늘 구운 빵을 누구에게 보낼지를 이야기합니다. 소프리스토에서는 빵을 나누는 것이 당연한 문화입니다. 가까운 친척은 물론, 이웃, 새로 온 이주민, 몸이 불편한 노인까지 모든 집에 몇 장씩 돌아갑니다. 이 날 구워진 빵은 수백 장에 달하지만, 그 대부분은 팔기보단 나눔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남은 빵은 수프, 치즈, 포도잎 요리와 함께 식탁에 올라갑니다. 아이들은 갓 구운 빵을 뜯어 들고 화덕 옆에서 허겁지겁 먹습니다. 그 장면은 음식보다도 삶의 깊은 온기를 전해줍니다. 빵은 맛으로도, 모양으로도 기억되지만 이 마을에서는 그 빵을 먹는 사람이 누구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때 그 빵은 누구랑 먹었지?”를 더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빵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마을을 잇는 언어이자 시간을 공유하는 매개체입니다. 한 마을이 함께 부를 피우고, 반죽을 나르고, 빵을 나누는 이 전통은 관광객이 찍는 몇 장의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삶 그 자체입니다. 


소프리스토의 빵은 단순한 요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과 시간, 노동과 나눔이 함께 구워진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손으로 전하고, 불로 이어지고, 밀가루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이곳을 여행하며 경험할 수 있는 건 맛뿐만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 이어져 온 사람들의 리듬입니다. 이 빵은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조각이지만, 그 안에는 세대를 건너온 온기와 잊히지 않는 삶의 방식이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