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 근교의 작은 산악 마을 지우펀(Jiufen)은 한때 금광 산업으로 번영했던 도시에서 이제는 관광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독특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골든 타운’이라 불리던 이곳은 금 채굴이 중단된 이후 급격히 쇠퇴했으나, 1990년대 이후 영화와 대중문화, 그리고 SNS를 통한 시각적 매력으로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지우펀은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감성적인 여행지로 자리 잡았지만, 동시에 ‘진짜 유산’과 ‘관광 재현’ 사이에서 정체성 논쟁이 끊이지 않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지우펀의 역사적 배경, 관광 전환의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문화관광의 방향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금광의 역사와 지역 산업
지우펀의 기원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산간 마을이 순식간에 광부와 상인, 투자자들로 붐비는 골드 러시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당시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에 있었고, 일본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금광 산업은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채굴로 인해 형성된 계단식 마을과 좁은 골목길, 특유의 건축물은 당시 금광 산업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지금도 지역 경관의 중요한 일부로 남아 있습니다.
광산업이 활기를 띠던 시절, 지우펀은 단순한 채굴 마을이 아니라 다양한 이주민이 모여든 ‘이민 도시’였습니다. 본토 중국인, 일본인, 대만 원주민 등이 교차하며 다문화적 양상이 뚜렷했고, 이는 음식, 언어, 생활양식에서 독특한 혼합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금광은 유한한 자원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금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광부들은 떠나갔고, 지우펀은 한때 ‘잊힌 마을’로 불리며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쇠퇴의 기억은 지역 주민들에게 양가적 감정을 남겼습니다. 한편으로는 가족 생계를 지탱했던 산업에 대한 향수가 있었지만, 동시에 위험한 노동과 환경 파괴의 기억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지우펀의 금광사는 단순한 경제사적 기록을 넘어, 사람들의 생활사와 정체성, 그리고 오늘날 도시가 어떤 유산을 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관광 재창조: 상업화와 주민 반응
지우펀의 재발견은 문화와 미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89년 대만 영화 <비정성시>(A City of Sadness)가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지우펀의 풍경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영화 속 골목과 찻집, 계단식 거리는 지우펀을 ‘근대사의 무대’이자 ‘레트로 감성 공간’으로 재해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분위기와 유사한 골목 풍경이 알려지며, 지우펀은 아시아 전역에서 ‘감성 관광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SNS의 확산은 지우펀을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하게 만들었습니다. 관광객들은 찻집의 홍등, 산등성이에 늘어선 건물,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공유하며 지우펀을 ‘인증샷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역 경제는 급속히 성장했고, 상점과 찻집, 기념품 가게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지만, 동시에 상업화에 대한 비판도 함께 커졌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관광 활성화로 인해 삶의 터전이 소음과 혼잡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전통 가옥이 상업적 용도로 개조되면서 원래의 건축적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또한, 지역 주민이 실제로 경험했던 금광 시대의 고통과 어려움은 관광 재현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고, ‘감성적 풍경’으로만 소비되는 현실에 대한 불만도 존재합니다.
반면, 다른 주민들은 관광으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소규모 숙박업, 음식점, 수공예품 판매 등 다양한 기회가 창출되었고, 지역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와 귀향의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결국 지우펀은 ‘상업화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여전히 정체성의 갈림길에 서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문화관광의 길
지우펀의 과제는 분명합니다. 관광 성장과 지역 정체성 보존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대만 정부와 지방 당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을 검토하며, 지우펀의 역사·경관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건축물과 골목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광과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금광 노동자의 생활사와 마을 공동체의 기억을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일부 박물관과 갤러리에서는 채굴 도구, 생활 용품, 구술 기록을 활용해 지역사의 맥락을 전달하려 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관광객에게 단순한 사진 명소가 아닌,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우펀은 대량 관광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방문객 분산 정책과 친환경 교통수단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좁은 골목의 특성을 감안해 차량 접근을 제한하고, 도보와 셔틀버스를 결합한 방식으로 이동을 유도합니다. 이는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주민 생활의 질을 지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관광 개발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반영하고, 수익이 지역사회로 환원되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주민들이 단순한 관광객의 배경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로 참여할 때 지우펀은 진정한 문화관광의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우펀은 금광 산업의 번영과 쇠퇴, 그리고 관광 재창조를 모두 경험한 드문 사례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은 ‘골든 타운’이라는 역사적 기억을 레트로 감성과 SNS의 이미지로 새롭게 포장하며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원래의 정체성과 생활사가 상업적 관광 속에 희미해지는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우펀의 미래는 단순히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있지 않고, 금광의 기억과 주민의 삶을 존중하며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지우펀은 과거와 현재, 상업화와 보존, 감성과 역사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도시입니다. 이 작은 산악 마을의 이야기는 오늘날 세계 곳곳의 관광지들이 직면한 공통의 질문—“어떻게 하면 유산을 지키면서도 관광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하나의 중요한 답을 던져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