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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로에 카스트로, 팔라피토와 신화의 공존

by parttime1 2025. 8. 22.

칠레 카스트로의 전통가옥인 팔라피토의 모습
칠레 카스트로의 전통가옥인 팔라피토의 모습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와 태평양을 잇는 해역에 자리한 칠로에(Chiloé) 군도는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과 건축유산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그 중심 도시인 카스트로(Castro)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바다와 육지, 신앙과 신화, 전통과 현대가 겹겹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의 대표적인 상징은 해안가에 들어선 팔라피토(palafito, 말뚝가옥),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목조건축 교회들입니다. 또한 칠로에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여전히 신화와 전설이 살아 있으며, 이는 어업과 해양 생태계, 공동체의 삶을 엮어내는 중요한 문화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카스트로가 보여주는 건축과 민속, 그리고 섬 특유의 생태적 기반을 하나의 문화생태계로 바라보며, 이들의 상호작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탐구하고자 합니다.

팔라피토의 건축·기술사

카스트로의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팔라피토는 칠로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건축 양식입니다. 팔라피토는 바닷가 조수 간만의 차를 고려해 나무 기둥 위에 세워진 가옥으로, 주민들이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과 어업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이 건축 방식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바다와 육지가 단절되지 않고 일상 속에 통합되는 공간적 사고를 반영합니다.

팔라피토의 구조적 특징은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를 활용한 점입니다. 칠로에에는 강우량이 많고 숲이 풍부하여 전통적으로 목재 건축이 발달했습니다. 현지 장인들은 해양 기후와 습기에 잘 견디는 가문비나무, 노간주나무 등을 사용하여 팔라피토를 지었고, 지붕은 대개 얇은 나무판자 ‘테줄라(tejuela)’로 덮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전통은 세대를 이어 전승되며, 오늘날에도 목수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팔라피토는 근대화와 함께 사라질 위기를 맞았습니다. 20세기 후반, 도시 개발과 도로 확장으로 인해 많은 팔라피토가 철거되거나 콘크리트 건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팔라피토는 관광 자원으로 재평가되며 보존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팔라피토는 카페, 게스트하우스, 예술 공간으로 활용되며 새로운 문화적 생명을 얻었습니다. 바다 위에 띄운 듯한 이 집들은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카스트로의 시각적 아이콘이자, 지역민의 정체성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목조건축 교회의 신성성과 보존

카스트로를 비롯한 칠로에 군도 전역에는 약 70여 개의 목조건축 교회가 남아 있으며, 이 중 16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카스트로의 산프란시스코 교회(Iglesia San Francisco)는 그 대표적인 예로, 노란색과 보라색이 대비되는 외관과 첨탑은 이 도시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칠로에의 목조건축 교회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가톨릭 선교사들이 전래한 건축 양식과, 지역 장인들의 목재 활용 기술이 결합하여 탄생했습니다. 섬 주민들은 외부의 건축 자재를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구조를 목재로 해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치, 기둥, 벽면의 정교한 목재 세공은 섬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독창적인 미학을 형성했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결혼식, 축제, 장례식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생활적 의사결정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 건축은 물리적 의미뿐 아니라 공동체적 신성성을 지닌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교회들은 심각한 보존의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해안 기후의 습기와 바람은 목재를 부식시키고, 경제적 어려움은 복원과 유지 관리에 제약을 줍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지역 주민, 학자, 정부, 국제기구가 협력하여 전통 기술을 활용한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복원이 단순한 건축 보존을 넘어 지역 정체성의 재확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존하는 일은 곧 칠로에 사람들의 역사와 신앙을 보존하는 일이 되며, 관광객들에게도 그 가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업 공동체와 문화전승

칠로에의 삶은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카스트로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어업 공동체로 번성해왔습니다. 바다는 식량의 원천일 뿐 아니라 신화와 전설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칠로에의 구전 전통에는 ‘카엘루스(Caicai Vilu, 바다의 뱀)’와 ‘트렌트렌 빌루(Trentren Vilu, 육지의 뱀)’ 같은 신화적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이 신화는 바다와 육지의 대립, 그리고 인간의 생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업 활동과 자연재해에 대한 주민들의 집단적 기억을 반영하며, 문화적 지혜로 기능했습니다.

실제 어부들의 생활에는 전통적 신앙과 금기가 여전히 일부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바다 생물은 금기시되기도 했으며, 항해 전에는 특별한 의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생태계와 어획량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적 규범으로 작동했습니다.

오늘날 어업 공동체는 점차 산업화된 해양 경제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문화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그물 제작 기술, 항해법, 민속 노래와 이야기들은 관광 프로그램과 결합되어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스트로에서는 어부와 함께 바다로 나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보는 체험이나, 어부들이 전해주는 칠로에 신화를 듣는 투어가 운영됩니다. 이를 통해 관광객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지역 문화의 ‘참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칠로에 섬 고유의 신화적 상상력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영화에도 영향을 주며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전통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문화적 자산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업과 신화, 공동체적 기억은 결국 카스트로의 문화적 풍경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이자,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관광과 보존 전략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칠레 칠로에의 중심 도시 카스트로는 팔라피토, 목조건축 교회, 그리고 어업과 신화를 매개로 한 공동체적 삶이 교차하는 독특한 문화생태계를 보여줍니다. 팔라피토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공간적 지혜의 산물이고, 교회는 종교적 신성과 공동체적 연대의 상징이며, 어업과 신화는 사람들의 일상과 자연관을 형성하는 문화적 자산입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카스트로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모두는 보존의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팔라피토는 도시 개발과 환경 변화 속에서, 교회는 기후와 경제적 제약 속에서, 어업 공동체는 산업화와 글로벌 경제 속에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카스트로의 미래는 단순한 관광 개발이 아니라, 보존과 재해석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카스트로의 가치는 과거의 흔적을 오늘의 삶 속에 녹여내고, 이를 미래 세대와 나누려는 실천 속에서 빛납니다. 팔라피토의 다채로운 색채, 교회의 목재 아치, 어부의 이야기와 신화가 어우러진 이 도시의 풍경은 단순한 유산을 넘어, 인간과 자연, 신앙과 생존이 얽힌 복합적 문화의 장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