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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윗 섬에 사파리가 있다

by parttime1 2025. 7. 18.

사파리의 기린들
사파리의 기린들

 

필리핀 팔라완 북부에 위치한 칼라윗 섬(Calauit Island)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아프리카 사파리 동물이 서식하는 섬입니다.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환경보호와 생물 다양성 보존의 실험장이 된 이 섬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낯선 생명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방문한 이들이 강렬한 인상을 받는 곳, 칼라윗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섬의 풍경은 단순한 이국적 체험을 넘어, 인간이 자연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도 기능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동물들, 칼라윗의 특별한 시작

칼라윗 섬의 사파리는 단순한 동물원이 아닙니다. 1976년,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기린, 얼룩말, 임팔라 등을 필리핀으로 옮겨 팔라완 칼라윗 섬에 보호구역을 조성했습니다. 이유는 놀랍게도 전쟁과 가뭄으로 위험해진 동물 종을 '피난시키는'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필리핀은 세계 자연보전기구와 협력하여 이동 가능한 보호지대를 실험했고, 그 실험지는 바로 칼라윗이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도 칼라윗 섬엔 아프리카 기린 20여 마리, 얼룩말, 염소, 임팔라 등이 자연 방목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동물들은 섬의 토착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며 세대를 이어 번식 중이며, 그 모습은 마치 진짜 사파리와 비슷합니다. 단, 동물원처럼 철창이 없고, 차량 또는 도보 탐방으로 자연 상태의 군락을 멀리서 관찰하게 되어 있어 야생성과 보호 목적이 함께 유지되는 구조입니다. 칼라윗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이식형 사파리 보호구역’으로 알려지며, 생물다양성 실험지로서 연구 가치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학술기관은 이 섬을 아시아 내 사파리 적응 사례로 등록해 관리 중이며, 매년 사육환경 개선과 유전자 다양성 유지 연구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기린의 행동 변화, 식생 적응 패턴, 혼합 서식지에서의 생태 교란 요소는 지금도 데이터로 수집되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섬 주민들의 새로운 역할

칼라윗 섬에는 원래부터 어업과 농업에 의존하던 소규모 마을이 있었습니다. 사파리 보호구역이 조성되면서 섬 주민들의 역할도 변하게 되는데,  '섬주민'에서 생태 가이드, 동물관리보조, 수목 해설가 등으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됩니다. 필리핀 정부와 NGO는 주민들에게 생태학 교육과 동물 행동 관찰 훈련을 제공했으며, 이후 주민들은 섬 전체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현지 해설가로 성장합니다. 관광객은 외부 가이드가 아닌 이 지역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동물과 식물에 대한 해설을 듣고, 보존 노력의 과정을 생생히 체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숙박 공간과 식사를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소득을 만들어내는 생태관광 모델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사파리 관리비용 일부도 주민 고용과 보건, 교육에 재투자되어 공동체 전체가 관광과 보호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사례입니다. 주민들은 단순한 고용인력이 아니라, 보호 정책 수립과 운영에도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은 동물행동 연구와 사료관리 훈련까지 맡으며, 생태관광을 지역 주도의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 관광지 운영을 넘어, 보존과 생활이 함께 가는 상생형 공동체 모델입니다.

칼라윗에서 만나는 동물 너머의 풍경

칼라윗은 동물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도 특별합니다. 이 섬은 팔라완 군도 북부에 위치해 있어 에메랄드빛 바다, 맹그로브 숲, 산호 군락이 인접해 있고, 섬 북서쪽은 철새 도래지로도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관광객은 사파리 투어 외에도 섬 외곽을 따라 <바다 생태 트레일> 또는 <전통 낚시 체험> 등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출 시간에 기린 무리 뒤로 떠오르는 햇빛, 조용히 숲을 가르는 얼룩말의 움직임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하고도 이국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또한 섬 남쪽에는 아카시아 숲이 조성돼 있어 계절에 따라 진한 초록빛과 황금빛이 섞인 길을 따라 산책하거나 사진을 찍는 여행객도 많습니다. 생태적으로 중요한 습지 구역은 철새와 양서류의 번식지로 보호되고 있으며, 일부 해변에는 거북이 산란 흔적도 발견됩니다. 최근에는 해양생태 보전 프로젝트까지 확장되어 산호초의 회복, 해초 숲 모니터링, 해류 분석 등 복합적인 자연보전 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복합적 요소 덕분에 칼라윗은 단순한 ‘섬 투어’가 아닌, 생태·동물·지역문화가 연결된 '복합형 자연 체험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칼라윗 섬은 단순한 사파리 체험지가 아닙니다. 이곳은 전쟁과 멸종 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공존의 실험실이자, 생태관광이 어떻게 지역 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가까이에서 기린과 눈을 마주치고, 그 옆에서 아이들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는 이 풍경은 도시인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칼라윗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지속 가능한 여행’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이 특별한 섬은 앞으로의 관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