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페어웨이, 정갈한 벙커, 완벽히 깎인 그린. 우리가 걸으며 감탄하는 그 아름다운 골프장의 표면 아래에는 매일 새벽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손과 발의 노동이 있습니다. 태국 전역의 리조트 골프장에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이 잔디를 깎고, 모래를 고르고, 쓰레기를 줍고, 스프링클러를 조절하며 말없이 하루를 보냅니다. 이 글은 그중 한 청년의 하루를 따라가며, 관광의 풍경 이면에 분명 존재하는,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새벽 4시, 잔디를 걷는 그림자들
그는 새벽 3시 45분에 일어납니다. 기숙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창문도 없는 시멘트 구조물 안에서, 열 명의 동료와 함께 침낭 하나로 잠을 잡니다. 물은 공동 수도에서 사용할 수 있고, 전기는 낮에만 간헐적으로 들어옵니다. 그의 하루는 골프장이 문을 열기 전, 어둠 속에서 시작됩니다. 조용히 신발을 신고, 허름한 조끼를 입고, 무거운 기계를 밀며 페어웨이를 향합니다. 누군가의 발자국도, 기계의 흔적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는 ‘흔적을 지우는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작업 구역은 골프장의 페어웨이 3~6번 홀. 그는 이른 아침, 낫으로 잡초를 정리하고, 연료를 줄인 잔디 깎는 기계를 밀며 1.5m 너비의 선을 맞춰갑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이슬이 마르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구역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들이 움직일 때, 그린은 숨을 쉽니다. 모래 벙커의 선 정렬, 볼 마크 제거, 습지 구역의 배수 등은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누구도 그것을 예술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그늘 만드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뜨거운 태양 밑에서, 당신이 걷는 그늘을 먼저 만드는 사람." 이 말은 겸손이자, 작지만 깊은 자부심입니다. 한낮이 되면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하는 그는, 해가 뜨기도 전 모든 준비를 마치는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골퍼가 티샷을 할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자 그의 작품입니다. 잔디의 결을 맞추는 일, 빗물 흐름을 조절하는 미세한 높낮이도 모두 그가 다듬은 것입니다.
잔디보다 낮은 시선, 골프장 안의 사람들
태국 내 고급 골프장은 종종 ‘천국 같은 자연’이라고 홍보합니다. 그러나 그 천국을 유지하는 손은 다국적 이주노동자들입니다. 골프장 한 곳에는 평균 100~150명의 잔디 관리·시설 유지 인력이 존재하며, 그중 절반 이상이 그와 같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입니다. 그들은 계약서도 없이, 중개인을 통해 입국해 6개월~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합니다. 대부분 가족을 고국에 두고 와 있으며, 일을 마치면 송금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이 청년은 미얀마 북부 출신으로. 어린 시절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어왔고, 15살부터 일했습니다. 골프장에서 일한 건 5년째. 그는 이 코스를 ‘내 손으로 만든 예술작품'이라고 부릅니다. 낮이 되면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골프장이 오픈되면, 작업자는 뒤편 오두막으로 철수합니다. 골퍼들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화장실도 따로 쓰고 식사도 따로 하며, 골프장 내에서 그는 그저 “노란 조끼 번호 12번”입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 골퍼들이 쓰레기를 버린 자리를 조용히 치우고, 잔디 속에 숨은 벌레를 손으로 잡아냅니다. 때로는 골퍼의 잃어버린 공을 발견해, 동료들과 소소한 장난을 치며 웃기도 합니다. 그곳은 노동의 현장이자, 묵묵한 생활의 무대입니다. 때로는 공이 지나간 자리에 자기의 흔적이 남는다는 것을 희망으로 삼으며 고된 일상을 견딥니다. 그는 골퍼들의 습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용히 인사하고, 어떤 이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다음날을 준비합니다.
일과의 끝, 그리고 그 너머
작업은 오후 2시경 마무리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리조트 외곽의 농장으로 향합니다. 저녁에는 파파야를 따거나, 닭장 청소를 하며 부수입을 벌고 있습니다. 주급은 1,800밧, 한화로 약 7만 원. 이 중 절반 이상은 고향 가족에게 송금합니다. 아침은 밥과 달걀, 저녁은 된장국과 야채. 하루에 두 끼를 먹고 고기를 먹는 건 한 달에 두세 번이 고작이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에겐 “합법적인 일자리와 낮잠 잘 수 있는 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일요일이 되면 동료들과 함께 강가에 모여 휴식을 즐깁니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며, 잠깐이라도 ‘아들이자 오빠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합니다. 그는 여전히 꿈이 있습니다. 잔디 관리 자격증을 취득하고, 언젠가 자신의 코스를 설계해 보는 것. 그가 그리는 그린은 ‘가장 낮은 시선에서도 완벽하게 보이는 풍경’입니다. 그가 다듬은 페어웨이에는 하루의 정직한 리듬이 담겨있습니다. 무심하게 보이는 잔디 결도 사실은 세심한 의도의 결과입니다. 그의 손으로 다듬은 이 잔디 위에서, 누군가는 전혀 다른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는 비록 이름 없는 존재일지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 한 장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을 살아갑니다. 그는 이 일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이 잔디를 밟고 인생 최고의 티샷을 날릴 테니까. 그는 알고 있습니다. 삶이란 언제나 두 겹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화려한 리조트와 푸른 필드, 고요한 샷의 순간. 그 모든 것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시간과 체온, 숨결이 깔려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하루를 따라가는 여행은 우리가 ‘골프’를 소비하는 방식뿐 아니라,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땅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을 해요. 하지만 나는 절대 평평한 사람이 아니에요.” 이 한 문장이, 이 여행 콘텐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잔디 위에, 오늘도 누군가의 삶이 조용히 누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