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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폐광마을, 사라진 노동의 흔적

by parttime1 2025. 7. 16.

석탄 광산 내부
석탄 광산 내부

 

태백은 석탄으로 먹고살던 도시였습니다. 한때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광부가 거주하며 매일 검은 땀을 흘리던 곳, 그러나 에너지 구조가 바뀌고 석탄산업이 사라지면서 이 도시는 고요한 폐광마을로 남았습니다. 이 글은 관광지로 포장되지 않은 태백의 폐광촌을 따라 걷는 기록입니다. 무너진 탄광, 녹슨 철로, 그리고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노동의 흔적은 지금도 무언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태백은 한때 대한민국의 심장이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태백은 대한민국 석탄 생산의 중추였습니다. 장성광업소, 삼척탄좌, 철암광업소 등 대규모 탄광이 곳곳에 있었고, 서울, 대구, 부산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태백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500미터 아래의 갱도 속으로 내려가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캤습니다. 당시 태백은 매일 밤낮으로 돌아가는 채탄장비의 진동 소리로 가득했고, 광업소 앞 골목에는 식당, 이발소, 광부복 수선소, 여관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월급날이면 시내 전체가 들썩였고, 술집마다 웃음과 고성이 뒤섞였습니다.

하지만 1989년, 정부가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에너지 공급이 석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로 전환되면서 정부는 탄광 폐쇄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태백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의 심장"에서 "기억 속의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폐광촌에 남은 건 콘크리트와 침묵뿐일까

태백역에서 장성광업소 쪽으로 걸어가면 아직도 1970년대 양옥구조의 광부 사택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비슷한 회색 건물들이지만, 창틀은 오래 녹이 슬었고 벽에는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습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폐업한 구멍가게, 철제 창문이 덜그럭 대는 이발소, 광산 안전모가 전시된 듯 남겨진 수선소 간판이 보입니다. 마을은 정지된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문을 열고 나오는 주민이 있고, 담배를 피우는 노인이 있습니다. 광업소 건물은 현재 일부가 역사촌이나 체험관으로 리모델링되어 있지만, 그 외곽에는 폐건물, 무너진 통로, 녹슨 갱도 입구가 남아 있습니다. 그곳은 입장료도 없고, 안내판도 없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진짜 폐광마을’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폐광은 단지 산업의 종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기능, 주민의 정체성, 삶의 방식 전체가 흔들리게 되고 태백은 그런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겪은 도시 중 하나입니다. 석탄은 사라졌지만, 광부는 어디로 갔을까? 떠난 이도 있고, 남은 이도 있습니다. 남은 이들은 식당 대신 쉼터를 운영하고, 광산기술학교를 졸업한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여전히 "탄광이 돌아가던 시절의 그림자"가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갱도 앞에 박제처럼 남은 구호판, ‘무재해 500일’, ‘채탄 협조는 생명이다’ 같은 문구는 더 이상 아무도 읽지 않지만, 마을의 벽면에서 그 시절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폐광 이후의 도시는 느리게 흘러갑니다. 관광지가 된 일부 공간을 제외하면, 태백은 여전히 회색빛과 적막함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엔 삶의 잔재와 고요한 저항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태백 폐광마을을 걷는다는 건 과거를 향한 여행이자, 지워지지 않는 시간 위를 걷는 행위입니다. 유령도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떤 주민들은 그들만의 브랜드로 카페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일부는 외지 예술가들과 함께 벽화를 그리거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합니다. 산업은 끝났지만, 공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산업이 사라졌어도 마을은 살아 있습니다. 이 글은 태백을 ‘과거의 도시’로만 소비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곳은 여전히 대한민국 산업사의 주체였던 이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폐광마을을 기록하는 이유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말하기 위함입니다.

태백 폐광마을은 산업의 끝자락에 서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변형입니다. 무너진 갱도와 비어버린 사택은, 한 세대가 남긴 노동의 흔적이자, 찬란했던 도시의 기억 저장소입니다. 여행자는 그 흔적을 보며 다시 묻습니다. "산업이 떠난 자리에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할까?" 태백은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요히 존재할 뿐. 그리고 그 침묵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