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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레스 여행 분화구와 민속마을 체험

by parttime1 2025. 7. 16.

직조기로 천을 짜는 여인
직조기로 천을 짜는 여인

 

인도네시아 플로레스(Flores)는 많은 여행자에게 여전히 미지의 공간입니다. 이 섬은 발리처럼 개발되지 않았고, 롬복처럼 리조트가 많지도 않지만, 그 대신 인류의 기억과 자연의 신비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섬입니다. 수천 년 전 화산의 흔적 위에 민속마을이 세워지고, 천직처럼 이어온 직조 문화는 사람들의 삶을 시간으로 연결하며, 바람과 비는 여전히 마을의 리듬을 이끕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플로레스의 세 가지 핵심 키워드인 분화구, 민속마을, 직조문화를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느림'과 '깊이'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이 섬은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을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켈리무투 분화구 – 세 가지 색의 호수가 묻는 질문

플로레스 동쪽의 켈리무투 국립공원(Kelimutu National Park)은 새벽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손전등을 들고 산을 오릅니다. 경사는 가파르지 않지만 공기는 묘하게 무겁고, 등 뒤로는 어둠 속에서 산새 소리가 울립니다. 해발 1,639m의 화산 정상에 다다르면 세 개의 크레이터 호수가 서로 다른 빛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에메랄드색, 청록색, 흑자색—이 조합은 자연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존재가 그려낸 것처럼 보입니다. 현지인들은 이 세 호수를 각각 영혼의 안식처라 부르며, 죽은 자의 영혼이 이곳으로 향한다고 믿습니다. 어린 영혼, 지혜로운 노인의 영혼, 죄 많은 자의 영혼이 각각의 호수에 담긴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색이 주 기적으로 변하는 이유도 ‘영혼의 감정 변화’ 때문이라 여깁니다. 과학적으로는 광물 반응과 미생물의 밀도 때문이라 해석되지만, 여행자는 그보다 더 큰 질문을 이 호수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새벽, 해가 뜨기 전 켈리무투에 도착하면, 호수는 안갯속에 잠겨 있고, 산 위엔 바람소리만 흐릅니다. 이곳은 ‘경치를 본다’는 개념이 아닌, 자연의 호흡을 옆에서 조용히 듣는 장소입니다. 켈리무투의 가장 깊은 매력은 ‘설명 불가능함’에 있습니다. 호수는 계절에 따라 색이 바뀌고, 어떤 날은 세 호수 모두 회색빛을 띠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같은 장소라도 매 순간이 다른 감각으로 여행자에게 다가옵니다.

워이레보 민속마을 – 구름 위에서의 공동체 체험

워이레보(Wae Rebo)는 플로레스 서쪽, 해발 1,100미터에 위치한 ‘구름 마을’입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가장 독창적인 민속 공동체로, 차량 접근이 불가능하며 약 3시간 이상의 산길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외부 세계와 단절된 자율 공동체입니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장로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며, 짧은 커피 의식을 통해 ‘방문자’가 아닌 ‘하룻밤 이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7채의 전통 원뿔형 가옥(Rumah Mbaru)은 각각 한 가문을 상징하고, 중앙 공터에서는 마을 회의와 공동 식사가 열립니다. 전기는 태양광으로 제한되고, 휴대폰 신호는 사라지며, 대신 불빛, 말소리, 닭 울음소리가 밤을 채웁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어른들은 공동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밥을 지어 줍니다. 여행자는 여기서 단 하루만 살아도 깨닫게 됩니다. 이곳의 삶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서로 돌보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요. 아침엔 안개 속에서 소들이 천천히 걷고, 마을 사람들은 함께 마당을 쓸고 장작을 나릅니다. 이곳에서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음’ 그 자체가 의미입니다. 워이레보는 느림의 철학이 삶으로 구현된 마을입니다.

이카트 직조문화 – 손끝에서 태어나는 상징의 언어

이카트(Ikat)는 플로레스 섬 여성들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예술입니다. 전통적으로 어머니로부터 딸에게 전수되며, 한 장의 천에는 가족의 계보, 자연의 변화, 마을의 신화가 새겨집니다. 특히 엔다(Ende), 마웅게(Maumere), 소아(Sikka) 지역은 이카트 중심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염색은 인디고 잎, 망고 껍질, 나무껍질 등 천연자원에서 얻으며, 무늬는 실을 미리 묶어 염색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를 '타이 - 다잉 (Tie - Dye)' 기법이라 하며, 색이 겹치는 부위마다 독특한 농담이 형성됩니다. 여성들은 하루 6시간씩, 수 주에 걸쳐 이 과정을 반복하며, 한 가정의 기억이 천으로 태어납니다. 이 천은 지금도 결혼식, 장례식, 성인식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행자는 워크숍을 통해 이 과정을 부분적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자신이 만든 작은 천 조각을 선물 받게 됩니다. 어떤 여행자는 이 경험을 두고 ‘기념품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이카트는 장식품이 아닌 ‘의미가 짜여진 직물’입니다.

 

플로레스는 눈으로 보는 섬이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는 섬입니다. 분화구의 고요함, 민속마을의 공동체 질서, 직조 천 위에 스며든 세월.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되묻습니다. 관광지가 줄 수 없는 깊이, 셀카가 남길 수 없는 기억. 그것이 플로레스의 본질입니다.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느리고 조용한 여정을 계획하고 있다면, 플로레스는 당신이 삶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섬이 되어줄 것입니다. 경험이 아니라, 삶과 동행하는 여행. 그 출발점은 바로 이 섬의 안개 속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