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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번 외암마을을 걷다 -시간에따라 달라지는 한 장소의 감각

by parttime1 2025. 7. 11.

 

옛 마을의 돌담길
옛 마을의 돌담길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서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하루동안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에 반복해 걷는 실험은 어떨까요? 충청남도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에서 오전, 오후, 해 질 무렵  세 번의 다른 시간대에 같은 길을 걸으며 감각과 풍경의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공간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여행자에게 어떤 감정과 경험을 주는지 체험했습니다.

1. 외암마을을 선택한 이유

충남 아산에 위치한 외암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이 군락을 이룬 전통 마을입니다. 초가집, 기와집, 정자, 논두렁, 돌담길, 대나무 숲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는 현대적인 요소와 거리를 두고 있어 마을 전체가 하나의 감각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위치는 아산시 송악면이며, 온양온천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약 20분 거리입니다. 성인 입장료는 2,000원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됩니다.

이 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하루 종일 머물 수 있는 안정된 환경과 이동하지 않아도 풍경의 밀도가 바뀌는 특성 때문입니다. 세 번 걷더라도 반복되는 느낌이 없고, 시간이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외암마을은 크진 않지만, 깊습니다.

2. 외암마을을 걷는 세 번의 시간 – 감각의 변화

① 오전 9시 – 기척 없는 마을

마을 문이 막 열리고,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햇살은 낮게 들어오고, 돌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만 들리고, 아직 상점들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의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하여 관광지 이전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느낌을 줍니다. 흙길의 표면이 아직 덜 마른 상태라 발걸음마다 바스락 거림보다는 약간 촉촉한 땅의 탄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혼자 걷기엔 더없이 좋고, 카메라보다 감각에 집중하기 좋은 시간으로 가장 몰입감이 있는 시간대입니다.

② 오후 2시 – 관광이 깨어난 마을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들어오고, 초등학생 단체가 몰려들었습니다. 돌담길엔 아이들 웃음소리가 퍼지고, 마당에는 전통놀이 체험부스가 열렸고, 기념품점엔 수세미, 한지 부채, 한복 인형이 진열되었습니다.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마이크를 타고 해설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사람의 온기가 더해지며 마을은 사회적 공간이 됩니다. 개인의 사색보다는 타인과의 공유가 중심이 되는 이 시간은 외암마을이 ‘관광지’로 전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대입니다.

③ 오후 5시 30분 – 사라지는 그림자 속을 걷다

하루를 마감하는 이 시간, 돌담길 위에 다시 조용한 빛이 내려앉았습니다. 낮보다 두 배는 길어진 금빛 그림자가 생기고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만 남습니다. 관광객들도 거의 빠져나가, 오전보다 더 조용해진 해 질 녘의 외암마을은 여행자와 마을이 1:1로 마주하는 순간을 선물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이 시간은  사색과 사진 찍기, 글쓰기 혹은 말없이 걷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였습니다.

3. 여행자로서 느낀 시간의 겹 - 단순한 반복이 아닌 감각의 깊어짐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걷는 건 자칫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암마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시간이 더하는 감각은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전에는 정적인 풍경 속에서 마을 자체에 집중했고, 오후에는 사람들과 어우러진 활기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 질 무렵, 고요함 속에서는 나와 공간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루 세 번 같은 길을 걸었지만, 외암마을은 매번 다른 얼굴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조용한 골목도, 북적이는 장터도, 고요한 석양도 모두 이 마을의 일부였고 그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이 진짜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지만. 가끔은 익숙한 공간을 다른 시간대에 경험하는 것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외암마을처럼 하루 종일 열려있는 곳에서 세 번 걷기 실험을 해 보는 건 여행을 다르게 구성하는 방법이 됩니다.

다음 여행에서는 낯선 곳 대신, 익숙한 장소에서 색다른 시간대를 선택해 보십시오.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예상치 못한 감각과 감정이 여행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