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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 오아시스의 도시의 물과 흙의 이야기

by parttime1 2025. 9. 1.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흙으로 만든 성벽, 이찬칼라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흙으로 만든 서역, 이찬 칼라

 

우즈베키스탄 서부의 히바(Khiva)는 한때 실크로드의 중요한 연결지였던 오아시스 도시로, 오늘날에도 이찬 칼라(Itchan Kala)라는 성곽 도시가 거의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바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있지 않습니다. 이곳은 사막 기후 속에서도 수백 년 동안 도시를 유지해 온 그들만의 독특한 물 관리 체계와, 흙벽 건축을 이어가는 보존 기술이 결합된 독창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가운 기후 속에서, 히바 사람들은 관개로를 따라 물을 나누고, 흙벽을 수시로 덧발라 성곽을 지켜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찬 칼라의 건축 논리, 오아시스 관개 시스템, 그리고 해가 진 뒤 드러나는 도시의 야간 생활을 중심으로 히바가 지닌 입체적인 매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찬 칼라: 흙으로 만든 성곽도시

히바의 이찬 칼라는 단순히 고대 유적지가 아닙니다. 흙과 진흙, 짚을 섞은 어도비(adobe) 벽돌로 축조된 성곽 도시로, 사막 환경에 적응한 건축적 지혜가 응축된 공간입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진귀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이찬 칼라의 성벽은 평균 10미터 이상 높이로 둘러쳐져 있으며, 사막의 강풍과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 흙벽은 표면이 금방 마르기 때문에 매년 주민들이 흙을 다시 덧발라야 하는데, 이 작업이 반복되며 성곽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성 안에는 쿠흐나 아르크(Kuhna Ark) 요새, 이슬람 호자 미나렛, 수많은 마드라사와 모스크가 질서 정연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이 건축물들은 석재보다 흙을 활용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단순히 재료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기후적 이점도 있었습니다. 흙은 낮 동안 열을 흡수하고 밤에는 서서히 방출해, 극심한 일교차 속에서도 실내 온도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에어컨이 없던 시절, 사막에서 도시를 유지하는 가장 합리적인 기술이었습니다. 히바의 건축적 논리는 단순히 형태와 미학을 넘어서, 생존과 직결된 실용성이 뚜렷합니다. 흙벽은 쉽게 무너질 수 있지만, 공동체가 힘을 합쳐 주기적으로 보수하면 장기간 유지가 가능합니다. 이는 ‘영속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유지 관리’를 기반으로 한 건축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찬 칼라는 인류가 극한 환경 속에서도 협력과 기술을 통해 어떻게 도시를 지속시켜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오아시스 관개 시스템과 농상공의 연결

히바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 관리, 특히 관개 시스템 덕분이었습니다. 히바 인근에는 아뮤다리야(Amu Darya) 강이 흐르는데, 이 강에서 뻗어나온 수로인 ‘아릭(aryk)’이 오아시스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아릭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농업과 도시 생활, 상업을 모두 지탱한 생명선이었습니다. 물이 모여든 히바 주변에는 밀과 면화, 과일이 재배되었고, 이는 도시의 식량 자급과 무역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관개 시스템은 공동체 운영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각 가정이나 마을이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순서를 엄격히 정했으며, 이를 관리하는 전담 인력이 존재했습니다. 물 분배가 공정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길 수 있었기에, 물 관리 규범은 도시 운영의 중요한 규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히바가 오랜 세월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가 있었습니다. 농업과 수공업은 긴밀히 연결되었습니다. 면화는 직물로, 곡물은 저장과 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더했습니다. 히바는 카펫과 도자기, 금속 공예품으로도 유명했는데, 이는 농업 생산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오아시스의 물길은 단순히 농작물만 키운 것이 아니라, 실크로드 무역을 지탱하는 산업 기반을 마련한 셈입니다. 이처럼 히바의 관개 시스템은 생존을 넘어 경제와 문화를 연결하는 축이었습니다. 물길 하나하나가 단순한 토목 기술이 아니라, 도시의 경제학과 사회학이 교차하는 현장이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연구 가치가 큽니다.

밤이 열리는 히바: 조명·소리·생활

히바의 낮은 햇볕과 모래바람으로 뜨겁고 고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전혀 다른 얼굴의 도시가 펼쳐집니다. 성 안의 골목길은 조용히 불빛이 켜지며, 흙벽은 낮과는 또 다른 색감을 드러냅니다. 전통적으로 히바 주민들의 생활은 해가 진 뒤 더욱 활기를 띠곤 했습니다. 이는 문화적 습관이 아니라, 사막 기후에 적응한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피해 활동을 최소화하고, 밤에는 서늘한 기온 속에서 시장을 열거나 이웃과 교류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찬 칼라 내부에서는 저녁 무렵 작은 공연이나 전통 음악 연주가 자주 열립니다. 현지 악기인 돔브라와 설타르의 소리가 골목길을 채우면, 낮 동안 관광객으로 붐비던 공간이 다시 지역민들의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전통 무용이 펼쳐지기도 하고, 집집마다 조촐한 모임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관광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랜 생활 리듬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야간의 히바는 도시 경관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인공조명이 적고, 대부분 은은한 조명으로 성벽과 미나렛이 드러나기 때문에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관광객들은 이 시간대에 성벽 위로 올라가거나 미나렛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곤 하는데, 이는 낮보다 훨씬 더 강렬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조용히 불이 켜진 흙벽 도시와, 멀리 사막 너머로 드러나는 별빛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은 히바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밤이 열리면 도시의 시간은 느려지고, 주민들의 목소리와 소리가 골목에 퍼집니다. 이는 ‘관광지 히바’가 아니라 ‘살아 있는 히바’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흙과 물로 이루어진 도시가 오늘까지 이어져 온 비밀은, 어쩌면 이 같은 생활의 리듬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히바는 이찬 칼라라는 흙 성곽 도시, 아뮤다리야 강의 물길을 이용한 관개 시스템, 그리고 해가 진 뒤 이어지는 독특한 생활 방식이 어우러진 오아시스 문명입니다. 흙벽을 덧바르며 성곽을 지키고, 물을 나누어 농업과 무역을 유지하며, 밤이 되면 다시 생활이 이어지는 도시의 시간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히바를 찾는 여행자는 단순히 ‘오래된 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막 환경 속에서 인류가 어떻게 생존과 문화를 동시에 이어왔는지에 대한 깊은 답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