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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3가- 서울의 마지막 산업 골목을 걷다 을지로3가역 11번 출구를 나서면, 서울의 또 다른 시간대가 펼쳐진다. 바로 옆 종로와 명동이 번쩍이는 쇼윈도로 치장된 도시라면, 이곳은 여전히 철과 기름, 잉크의 냄새로 가득한 서울의 내부다. 좁은 골목 안에는 사람 키보다 높은 철판이 빼곡히 세워져 있고, 그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금속의 마찰음이 은은하게 울린다. 오래된 건물의 벽면에는 전화번호가 손으로 써진 간판이 붙어 있다. 하나같이 오래된 글씨체지만, 사람의 손맛이 남아 있다. 을지로는 서울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동안에도 ‘손으로 움직이는 도시’로 남은 몇 안 되는 구역이다. 오늘 이 길을 걸으며 듣게 되는 기계의 진동, 인쇄소의 리듬, 낡은 철제 문이 여닫히는 소리들은 서울의 산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철과 잉크의 도시, 손의 기억.. 2025. 10. 25.
엘바섬, 돌아오지 못한 자유의 예행 연습 엘바섬(Elba Island)은 이탈리아 서해안, 토스카나의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면적은 서울보다 작지만, 그 이름은 한 인간의 자유와 권력, 그리고 그 사이의 아이러니를 압축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1814년, 유럽을 뒤흔들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첫 번째로 유배된 곳. 그러나 이 섬에서의 유배는 그에게 종말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패배한 황제가 아니라 ‘작은 왕’으로서 엘바의 행정을 직접 관리하고, 군대를 재조직하며, 섬의 운명을 짧은 시간 동안 바꿔 놓았다. 엘바는 단순히 유배의 공간이 아니라, 몰락 이후 인간이 어떻게 다시 ‘삶’을 만들어가는가를 보여주는 장소였다.몰락의 시작, 그러나 끝은 아니었다1814년 5월, 나폴레옹은 파리에서 퇴위한 뒤 소수의 수행원과 함께 엘바.. 2025. 10. 13.
세인트 헬레나, 황제가 남긴 고립의 섬 대서양의 한가운데, 해류와 바람이 엇갈리는 지점에 세인트헬레나 섬이 있다. 면적은 서울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세계사의 거대한 서사가 이곳에 갇혀 있다.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 문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유배의 섬이다. 영국 본토에서 배를 타고 두 달 넘게 항해해야 닿는 이곳은, 인간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다. 그래서 세인트헬레나는 단순한 지리적 고립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어디까지 고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지금도 섬은 놀라우리만큼 조용하다. 파도 소리와 새 울음만이 들리는 언덕을 걷다 보면,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고 생각이 깊어진다.패배한 황제, 인간으로 돌아가다1815년 워털루에서 패한 나폴레옹은 다시는 유럽 땅을 밟지 못.. 2025. 10. 12.
타히티, 문명에서 벗어난 예술의 유배지 남태평양의 한가운데, 타히티 섬은 수천 킬로미터의 바다로 둘러 싸인 채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고립이야말로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은 이 섬으로 향했다. 파리의 예술계와 산업 문명에 염증을 느낀 그는 “진짜 인간의 삶”을 찾아 문명으로부터 스스로를 유배시켜 버렸다. 타히티는 그에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인간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실험의 장소였다. 그가 남긴 말처럼 “나는 원시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늘날 타히티는 그의 그림 속 색채처럼 찬란하지만, 그 속에는 식민지의 그림자와 예술가의 고독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문명을 떠난 고갱, 타히티로의 도피폴 고갱이 타히티로 떠난 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었다. 당시 파리의 예술계는 인상주의에서 상징주의로 넘어가.. 2025. 10. 11.
백담사, 설악산이 품은 유배와 수행의 길 설악산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바람의 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동차 소음이 사라지고 물소리와 솔바람이 섞이기 시작하면, 그곳이 바로 백담사로 향하는 길입니다. 백담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조선의 유배 문화와 한국 불교 수행 전통이 함께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백 번 머문다’는 이름처럼, 사람들은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마음을 내려놓고 머물곤 합니다. 고요한 산사와 그곳을 따라 흐르는 계곡, 그리고 그 속에 쌓인 역사적 이야기들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백담사와 역사 속 유배 인물들백담사의 역사는 설악산의 깊은 품속만큼이나 깊습니다.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백담사는 오랜 세월 동안 불교 수행자뿐 아니라, 유배된 인물들에게도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왔습.. 2025. 10. 10.
갈레, 바다와 성곽이 만든 스리랑카의 시간 스리랑카 남서부 해안에 자리한 갈레(Galle)는 바다와 성곽이 만나 독특한 도시 풍경을 이룬 곳입니다. 16세기 포르투갈인에 의해 요새가 세워지고,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이 차례로 점령하면서 갈레는 오랜 세월 동안 해양 교역의 요충지로 기능했습니다. 오늘날 갈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곽 도시로, 아시아와 유럽의 건축과 생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에게는 이국적 풍경을 즐기는 명소로, 학자들에게는 해양사와 식민지 건축 연구의 현장으로, 현지인들에게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기능합니다.성곽 도시의 역사와 건축 유산갈레의 가장 큰 특징은 잘 보존된 성곽과 요새입니다. 포르투갈이 처음 성을 쌓았을 때는 단순한 방어 기지였으나, 17세기 네덜란드가 대대적으.. 2025.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