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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목동의 계절을 따라 푸른 능선과 구름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조지아 북동부의 고산 지대인 투셰티(Tusheti)에는 여전히 자연과 계절의 리듬에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목 목동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전기, 신호, 편의시설 없이도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며, 그만큼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땅과 하늘의 질서 속에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따라가며, '보이지 않는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인간의 원형'을 들여다보게 됩니다.길이 열리는 순간, 6월의 이주조지아 투셰티 지역은 겨울이 오면 완전히 고립됩니다. 해발 2,800m에 이르는 아바노 패스(Abano Pass)는 10월부터 눈과 얼음에 뒤덮이며 폐쇄되고, 다시 개통되는 건 보통 5월 말~6월 초입니다. 이 시기, 목동 가족들은 남부 평지에서 트럭과 말을 이용해 투셰.. 2025. 7. 24.
폐교에서 다시 열린 책의 시간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은 인구 2천 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농어촌 마을입니다. 이곳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폐교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과거 '어성초등학교'로 불렸던 이 건물은 학생 수 감소로 2009년에 문을 닫았지만, 지금은 '손양 작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고 있습니다. 잊혀진 공간이 마을의 문화 중심으로 탈바꿈한 이 사례는 단순한 건물 활용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 글은 그 공간이 가진 변화의 서사, 주민과 공간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기록한 것입니다.교실은 사라졌지만 책은 남았다폐교가 된 지 10여 년이 흐른 후, 마을 주민들과 귀촌 청년들은 이 공간을 도서관으로 바꾸자는의견에 뜻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더 이상 수업은 없지만, 그 안에 ‘지식’과 ‘기억’을 담을 수는 있다.. 2025. 7. 24.
마늘로 살아가는 마을 이야기 경북 의성군 봉양면은 흔히 '의성마늘의 본고장'이라 불립니다. 이곳은 강한 일조량과 낮은 습도, 배수가 좋은 사질토를 갖춘 지역으로, 마늘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마늘이 잘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이 마을이 특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의 마늘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생계의 중심이자 공동체의 상징입니다. 마늘이라는 작물이 어떻게 한 마을을 구성하고, 유지시키는지를 관찰하는 일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선 삶의 체험입니다.마늘 농사는 노동의 연속이다마늘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에 손이 많이 가는 작물입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마을 주민들은 종구를 손질하고 밭을 정리합니다. 의성의 마늘은 보통 10월 중순에 심고 이듬해 6월에 수확하게 됩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마늘은 땅.. 2025. 7. 23.
더덕 향기 따라간 마을길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은 광산이 사라진 후 새로운 생계를 모색하던 마을이었습니다. 이곳은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이며, 일교차가 크고 흙은 단단하지만 배수가 잘되는 곳으로 바로 그 조건이 더덕이라는 뿌리식물에게는 이상적인 땅이 됩니다. 수십 년 전부터 이곳 주민들은 마을 공동체 단위로 더덕을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더덕 하나로 사는 마을’이라 불릴 만큼 정체성이 분명한 마을이 되었습니다.관광지로서의 화려함은 없지만 이 마을은 매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더덕 수확철이 되면 흙냄새와 함께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곳입니다. 이 글은 그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며 관찰한 풍경, 사람, 그리고 더덕이 만들어낸 관계에 관한 기록입니다.땅을 파야 보이는 작물, 더덕더덕은 흙 위로는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잎사귀와 .. 2025. 7. 23.
장날에 다녀온 홍천 이야기 강원도 홍천군은 면적은 넓지만 인구 밀도는 낮은 전형적인 내륙형 지역입니다. 이 지역의 중심지인 홍천읍에서는 매월 3일, 8일, 13일 등의 날짜에 전통 장이 서며, 지역민들과 농민, 상인, 그리고 일부 여행자들이 이 리듬을 따라 한 곳에 모입니다.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한 이 장날은, 단순한 상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시간과 계절,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생생한 현장입니다. 서울과 불과 두 시간 거리의 이곳 장터는, 여전히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로컬푸드, 진열대 너머의 농가홍천 장날의 핵심은 로컬푸드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단지 ‘지역에서 난 식재료’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판매자는 직접 재배하거나, 이웃 농가에서 직접 받아온 식재료만을 판매합니다. 상품은 포장.. 2025. 7. 23.
제로숙소에서 보낸 제주 하루 제주도 구좌읍은 성산 일출봉과 세화해변 사이에 자리한 조용한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제로웨이스트’를 내건 숙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친환경 인테리어가 아닌, 숙박의 구조 자체를 탄소중립에 가깝게 설계한 공간으로, 에너지는 태양광으로 충당되고, 식사는 채식 위주로 구성되며, 일회용품은 철저히 배제된 곳입니다. 이 글은 실제로 그런 제로 숙소에서 머문 하루를 기록한 것이며, 관광보다 체류, 소비보다 실천에 가까운 여행의 흐름을 전합니다.전기 없는 밤, 햇빛으로 운영되는 숙소숙소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전등 대신 천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었습니다. 건물은 남향으로 지어져 낮 동안 태양의 각도를 고려한 채광 구조를 갖추고 있었고 에너지원은 대부분 태양광 패널이며, 실내 온.. 2025.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