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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골프장 이주 노동자의 하루 푸른 페어웨이, 정갈한 벙커, 완벽히 깎인 그린. 우리가 걸으며 감탄하는 그 아름다운 골프장의 표면 아래에는 매일 새벽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손과 발의 노동이 있습니다. 태국 전역의 리조트 골프장에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이 잔디를 깎고, 모래를 고르고, 쓰레기를 줍고, 스프링클러를 조절하며 말없이 하루를 보냅니다. 이 글은 그중 한 청년의 하루를 따라가며, 관광의 풍경 이면에 분명 존재하는,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새벽 4시, 잔디를 걷는 그림자들그는 새벽 3시 45분에 일어납니다. 기숙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창문도 없는 시멘트 구조물 안에서, 열 명의 동료와 함께 침낭 하나로 잠을 잡니다. 물은 공동 수도에서 사용할 수 있고, 전기는.. 2025. 7. 21.
캄보디아 끄라체 돌고래와 마을의 공존 캄보디아 메콩강 중류의 한적한 도시 끄라체(Kratié). 이곳은 세계에서도 희귀한 민물 돌고래, 이라와디 돌고래(Irrawaddy Dolphin)의 마지막 서식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돌고래보다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이 돌고래들과 함께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을 지키고, 삶을 재구성해 나가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 글은 끄라체 마을의 생태 보전, 관광의 재해석, 공동체의 변화를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메콩강의 숨은 생명, 이라와디 돌고래끄라체 지역은 메콩강이 완만히 흐르며 폭이 넓어지는 지점입니다. 바로 이곳에 이라와디 돌고래가 서식합니다. 이 돌고래는 바다에 사는 대부분의 돌고래와 달리, 민물에서 살아가는 희귀종입니다. 둥근 머리, 작은 등지느러미, 유순한 행동이 특징이며,.. 2025. 7. 21.
멘타와이족 문신이 말하는 삶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쪽 끝, 판다이 시불루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야 도착하는 열대 우림의 섬, 멘타와이(Mentawai). 이곳에는 몸 전체에 정교한 문신을 새기고 살아가는 멘타와이족이 있습니다. 이들의 문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삶의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정체성을 담은 언어입니다. 이 글에서는 멘타와이족의 문신 문화가 어떻게 삶의 기록, 전통의 실천, 공동체의 연대로 이어지는지를 세 가지 시선으로 살펴봅니다.몸에 새기는 삶의 지형도멘타와이족의 문신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문신은 삶을 새기는 지도입니다. 문신은 보통 사춘기 이전에 시작되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팔, 다리, 가슴, 배, 등, 얼굴까지—몸 전체를 따라 정교한 기하학적 패턴이 새겨집니다. 이 무늬들은 개인.. 2025. 7. 20.
제천 구담마을, 물 속에 남은 기억 제천 청풍면의 구담마을은 이제 지도에서도 찾기 어려운 마을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수십 개 마을 중 하나였던 구담은, 비록 수면 아래 잠겼지만, 그 안에 살아있던 사람들, 시간, 풍경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이 글은 그 기억의 조각을 모아, 구담이라는 마을이 사라졌지만 결코 잊히지 않았음을 기록하는 여정입니다.수몰 전, 구담마을은 어떤 곳이었나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일대에 자리했던 구담마을은 충주호가 조성되기 전까지 농업과 자연 중심의 조용한 산촌 마을이었습니다. 이름 ‘구담(龜潭)’은 거북이가 연못에 몸을 담근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실제로 마을은 낮은 산들에 둘러싸인 반달형 분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논과 밭은 강.. 2025. 7. 20.
캄풍바루에서 하루를 살아보면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중심에는 전통 목조 가옥과 느린 삶이 공존하는 ‘캄풍바루(Kampung Baru)’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초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채, 100년 넘게 원주민 공동체가 살아가는 이 마을은 ‘도시의 심장부에 숨겨진 과거’라 불립니다. 이 글에서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곳에서 하루를 살아본다면 어떤 풍경, 사람, 감각을 만나게 될지를 세 가지 시선으로 풀어보겠습니다.아침, 목조가옥에서 들리는 삶의 소리캄풍바루의 하루는 도시보다 훨씬 느리게 시작됩니다. 알람 소리 대신 닭 울음소리와 나무마루를 밟는 소리가 들리는 이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대문 없는 마당을 오가며 자연스레 인사를 나눕니다. 집들은 대부분 1920~1950년대 지어진 전통 말레이식 목조 가옥으로,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습.. 2025. 7. 20.
랑카위 섬 원주민과 산다는 것 랑카위 섬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오랑 아슬리(Orang Asli)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레이어로 '사람'이라는 뜻의 '오랑'과 '원주민'을 뜻하는 '아슬리'가 합쳐진 말로, 말레이 원주민 공동체인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들의 생존 방식, 자연 인식,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지켜낸 문화적 지혜를 세 가지 측면으로 풀어봅니다.숲의 언어를 아는 사람들오랑 아슬리는 나무를 자르기 전에 숲에 허락을 구합니다. 이들은 숲을 자원 창고가 아니라 생명과 대화하는 공간으로 인식합니다. 랑카위 섬의 내륙에는 관광객이 거의 가지 않는 밀림 지대가 있으며, 이곳은 오랑 아슬리 Temuan 부족이 채집, 사냥, 약초 채취 등을 통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 2025.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