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18

버스 한 줄로 엮인 마을들 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는 버스 노선 하나가 곧 삶의 경로이자, 마을과 마을을 엮는 유일한 실선입니다. 도시에서는 사라진 ‘노선 중심 이동감각’이, 시골에서는 여전히 일상을 지배합니다. 이번 글은 하나의 버스노선이 관통하는 여러 마을을 따라가며, 그 안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정류장이 품은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GPS나 내비게이션이 아닌, 시간표와 정류장 이름으로 이동하는 방식. 그 느림과 불편함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입니다.정류장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마을들경상북도 군위에서 청송으로 이어지는 261번 농어촌버스는 하루 다섯 번만 운행합니다. 이 노선은 대구광역시 외곽에서 출발해 군위읍을 거쳐, 금성면, 부계면, 송소리, 외내리 등 작고 외딴 마을들을 관통합니다. 흥미로운 점.. 2025. 7. 22.
도주리, 이름에 담긴 말의 마을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도주리는 지도로 보면 작은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지명부터가 방언의 흔적을 품고 있습니다. ‘도주(道舟)’라는 이름은 지역 사투리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깊은 골짜기 아래로 흘러가는 물줄기 또는 ‘배처럼 눕는 땅’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마을은 단순히 조용한 농촌이 아니라, 언어와 지형,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맞물려 살아 움직이는 공간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사라져 가는 말과 함께, 그 말속에 남은 마을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도주라는 말, 사라진 언어의 지형도주리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면 낯설게 들립니다. 행정 지명은 '도주(道舟)'로 표기되지만, 이곳 사람들은 ‘도지’나 ‘도주지’라고 부릅니다. 이는 경상북도 남부 지역에서 쓰이는 방언 구조의 흔적이 남.. 2025. 7. 22.
새벽 어시장, 시간의 파도 위를 걷다 해가 뜨기 전, 도시는 여전히 잠들어 있지만 어시장은 이미 하루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흔히 여행은 낮의 풍경을 전제로 하지만, 이 글은 시간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보려 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그 짧은 시간에만 존재하는 어시장의 리듬을 따라가 봅니다. 관광객이 오기 전, 해가 뜨기 전, 상인과 어부만이 오가는 시장은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릅니다.해뜨기 전, 시장은 이미 바쁘다포항 죽도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 40분. 시장 주변은 아직 가로등에 의지한 채 어둡지만, 시장 내부는 대낮처럼 밝습니다. 큰 수조에는 살아 있는 광어와 도다리가 빠르게 헤엄치고, 해산물 바구니를 머리에 인 상인들이 소리 없이 움직인다. 새벽의 시장은 고요하지만 분주합니다. 이 시간대.. 2025. 7. 21.
태국 골프장 이주 노동자의 하루 푸른 페어웨이, 정갈한 벙커, 완벽히 깎인 그린. 우리가 걸으며 감탄하는 그 아름다운 골프장의 표면 아래에는 매일 새벽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손과 발의 노동이 있습니다. 태국 전역의 리조트 골프장에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이 잔디를 깎고, 모래를 고르고, 쓰레기를 줍고, 스프링클러를 조절하며 말없이 하루를 보냅니다. 이 글은 그중 한 청년의 하루를 따라가며, 관광의 풍경 이면에 분명 존재하는,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새벽 4시, 잔디를 걷는 그림자들그는 새벽 3시 45분에 일어납니다. 기숙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창문도 없는 시멘트 구조물 안에서, 열 명의 동료와 함께 침낭 하나로 잠을 잡니다. 물은 공동 수도에서 사용할 수 있고, 전기는.. 2025. 7. 21.
캄보디아 끄라체 돌고래와 마을의 공존 캄보디아 메콩강 중류의 한적한 도시 끄라체(Kratié). 이곳은 세계에서도 희귀한 민물 돌고래, 이라와디 돌고래(Irrawaddy Dolphin)의 마지막 서식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돌고래보다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이 돌고래들과 함께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을 지키고, 삶을 재구성해 나가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 글은 끄라체 마을의 생태 보전, 관광의 재해석, 공동체의 변화를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메콩강의 숨은 생명, 이라와디 돌고래끄라체 지역은 메콩강이 완만히 흐르며 폭이 넓어지는 지점입니다. 바로 이곳에 이라와디 돌고래가 서식합니다. 이 돌고래는 바다에 사는 대부분의 돌고래와 달리, 민물에서 살아가는 희귀종입니다. 둥근 머리, 작은 등지느러미, 유순한 행동이 특징이며,.. 2025. 7. 21.
멘타와이족 문신이 말하는 삶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쪽 끝, 판다이 시불루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야 도착하는 열대 우림의 섬, 멘타와이(Mentawai). 이곳에는 몸 전체에 정교한 문신을 새기고 살아가는 멘타와이족이 있습니다. 이들의 문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삶의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정체성을 담은 언어입니다. 이 글에서는 멘타와이족의 문신 문화가 어떻게 삶의 기록, 전통의 실천, 공동체의 연대로 이어지는지를 세 가지 시선으로 살펴봅니다.몸에 새기는 삶의 지형도멘타와이족의 문신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문신은 삶을 새기는 지도입니다. 문신은 보통 사춘기 이전에 시작되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팔, 다리, 가슴, 배, 등, 얼굴까지—몸 전체를 따라 정교한 기하학적 패턴이 새겨집니다. 이 무늬들은 개인.. 2025. 7. 20.